영화 

(프랑스대혁명-시민예술-나폴레옹 전쟁-18세기 연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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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민혁명과 시민사회의 형성)

- 영국 혁명 - 미국 독립 - 프랑스 혁명 - 산업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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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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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 자유주의 - 민족주의 - 19세기 미국과 러시아 - 19세기 문화 -


빈 체제의 형성과 붕괴
 
  

1. 빈 체제의 성립


(1) 빈 회의(1814∼1815)
    ① 목적 : 나폴레옹의 몰락 후 유럽의 전후 처리를 위해 빈 회의가 열렸다.
    ② 성격 : 프랑스 혁명 이후의 변화를 무시하고, 각국의 영토와 지배권을 혁명 이전의
        상태로 복구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2) 빈 회의의 결과
    ① 프랑스의 왕정 복고 : 루이 18세가 왕으로 즉위하여 부르봉 왕조가 복고되었다.
    ② 4국 동맹 체결 :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동맹을 맺어 혁명을 막고,
        구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③ 민족주의ㆍ자유주의 탄압 : 빈 회의를 주도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유
        럽 각지에서 일어났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하였다.

2. 빈 체제의 동요

(1) 민족주의 운동의 시련 :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의 대륙 정복으로 각성된 민족주의
     운동은 빈 체제하에서 억압을 받았다.

(2)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독립
    ① 배경 :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자극되어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② 미국의 '먼로 선언' : 유럽 여러 나라의 아메리카에 대한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지지하였다.
    ③ 영국의 지지 : 아메리카에 대한 시장 개발을 목적으로 독립을 지지하였다.
    ④ 결과 : 1820년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지배로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3) 그리스의 독립(1829) :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는 동부 지중해 지역
     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의 원조를 받아 독립에 성공하였다.
     그리스의 독립은 빈 체제 동요의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자유주의
 
  

1. 프랑스의 자유주의

 

 

7월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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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혁명(1830.7)
    ① 원인 : 부르봉 왕가는 프랑스 사회를 혁명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하였다.
    ② 경과 : 부르봉 가의 전제 정치에 격분한 파리 시민들은 루이 필리프를 시민의 왕으로
        추대하여 7월 왕정을 수립하였다(입헌 군주제).
    ③ 영향 :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였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자유주의 운동
        이 일어났다.

(2) 2월 혁명(1848.2)


    ① 원인 : 7월 왕정이 소수 자본가층의 이익만 대변하고, 중산층과 노동자층의 선거법
        개정 요구를 탄압하였다.
    ② 경과 : 루이 필리프를 축출하고 공화 정부를 수립하였다(제 2공화정).
    ③ 영향 :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추방되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민족 통일 운
        동이 일어났다.

2. 영국의 개혁과 의회 정치


(1) 영국의 개혁
    ① 선거법 개정 : 선거법 개정을 통해 신흥 상공 계층에 선거권을 확대시켰다.
    ② 차티스트 운동(1838∼1848) :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보통 선거, 비
        밀 투표 등을 주장하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2) 빅토리아 시대 : 19세기 후반 영국의 번영기로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다.
    ① 자유주의 정책 : 해외 발전을 통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ㆍ곡물법 폐지 : 외국산 곡물의 수입을 금지하여 지주 계급을 옹호했던 곡물법을 폐지
            하였다.
        ㆍ항해법 폐지 : 자유 무역을 통한 해외 발전을 도모하였다.
    ② 의회 정치의 발달 : 보수당과 자유당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의회 정치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통일
 
  

1. 민족주의 운동


(1) 목표 : 안으로 분열된 민족을 통일하여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밖으로 외국의 지배
     에서 독립하여 민족 국가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2) 전개 과정
    ① 민족주의 운동의 확산 :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유럽 사회에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
        되었다.
    ② 빈 체제의 동요 : 빈 체제하에서 각국의 민족주의 운동이 탄압을 받았으나, 라틴 아
        메리카의 여러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그리스가 독립함으로써 빈 체제가 동요하였다.
    ③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2. 이탈리아 왕국의 성립

(1) 통일 전의 이탈리아 : 당시 이탈리아는 '임자 없는 장화'라고 불렸다.
    ① 빈 회의의 결과 이탈리아는 나폴리 왕국, 사르데냐 왕국, 로마 교황령으로 분열되
        었다.
    ② 이탈리아의 북부 지방은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③ 마치니의 통일 운동 : 프랑스 2월 혁명에 자극을 받아 청년 이탈리아 당을 결성하
        고 통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2) 사르데냐 왕국의 통일 운동
    ① 카보우르 : 사르데냐 왕국의 재상으로 외교와 군비를 강화하여 국력을 배양하고 통
        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프랑스 군의 원조를 받아 오스트리아와 싸워 북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를 통일하였다.
    ② 가리발디 : 의용군을 이끌고, 남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점령하여 사르
        데냐 국왕에게 바쳤다.

 


(3) 이탈리아 왕국 성립(1861) : 사르데냐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즉위하였다.
    ① 베네치아 합병 :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을 틈타 베네치아를 병합하였다(1866).
    ② 로마 교황령 합병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틈타 로마 교황령을 점령하고(1870)
        로마로 수도를 옮겼다.

 독일의 통일
 
  

1. 독일 제국의 성립 과정


(1) 통일 전 독일의 상황
    ①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
    ② 빈 회의의 결과 독일 연방이 성립되어 35왕국과 4자유시로 이루어져 있었다.

(2)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운동
    ① 관세 동맹(1834) : 프로이센 중심으로 관세 동맹을 체결하여 정치적 통일에 앞서 경
        제적으로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②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 :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통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의회의 반
       대를 무릅쓰고 철혈 정책을 강행하여 군사력을 확장하고 무력에 의한 통일을 꾀하였
       다. 철은 군비를, 혈은 국민의 희생을 의미한다. 즉 세금에 의한 군비 증강 정책이다.

 

비스마르크의 의회 연설문

프로이센은 적절한 시기에 사용할 힘을 보존해야 되며, 과거에 그런 시기를 몇 차
례 지나쳐 버렸다. 빈 조약 이래 우리의 국경은 건전한 민족 생활에는 적합지 않은
것이다. 이 시대의 중대한 문제들은 연설이나 다수결에 의한 결정들에 의해 좌우되
는 것이 아니라, 철(鐵)과 혈(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③ 북독일 연방 창설 : 오스트리아를 격파(1866)하여 북독일 연방을 창설하였다.
     ④ 프랑스와의 전쟁 승리(1870) : 프랑스 나폴레옹 3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알사스
        ㆍ로렌 지방을 병합하고, 남독일의 여러 나라를 연방에 참가시켜 독일 제국을 수립하
           였다.


2. 독일 제국의 성립(1871)


(1)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2) 오스트리아 : 독일 제국에서 제외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성립되었다.

 

 

 

 

 

 


 19세기 미국의 발전
 
  

1. 남북 전쟁 이전의 미국


(1) 민주주의의 발전 :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민주주의가 꾸준히 발달하였다.

(2) 서부 개척 : 19세기에 들어와서 서부 영토를 개척하여 태평양 연안까지 영토가 확대
     되었다.

(3) 인구의 증가 : 유럽으로부터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4) 경제 발전 : 산업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공업 국가로 발전하였다.

(5) 남북 간의 격차 : 초기의 식민지 시대부터 지형, 기후 등의 자연 환경과 경제 생활의
     차이에 따라 남북 간의 지역 격차가 생겨났다.


 2.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남북 간의 대립 격화

(1) 남부와 북부의 차이점
    ① 남부 : 노예 노동을 이용하여 목화, 사탕수수, 담배 등의 플랜테이션 농업을 주로 하
        는 대농장이 발달하였고, 목화 등을 수출하기 위한 자유 무역 정책과 지방 분권을
        주장하였다.
    ② 북부 : 자유 노동을 바탕으로 한 상공업이 발달하여 일찍부터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
        되었다. 영국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한 보호 무역 정책을 추구하였고, 연방 정부
        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였다.

(2) 노예제에 대한 남북의 의견 대립
    ① 남부 : 노예제를 폐지하면 농업이 파산하므로 노예제의 존속을 외쳤다.
    ② 북부 : 공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예제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영화: Gone with the Wind(1939)

 

 

3. 남북 전쟁(1861)


(1) 발단 :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출신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남부의 7개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따로 아메리카 연방을 결성하였다.

(2) 경과 : 북부의 남부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남부가 유리하였다.

(3) 결과 :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 이후 풀려난 노예들이 북부에 가담하고, 국제 여론이
     북부를 지지하면서 북부가 승리하였다.

 

 

4. 남북 전쟁 이후의 미국


(1) 1869년 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면서 통합된 국가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2) 산업 혁명이 급속히 추진되면서 공업이 더욱 발전하였다.

(3) 국민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고 이후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세기 러시아의 발전
 
  

1.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 발전 과정


(1) 남하 정책의 추진 : 표트르 대제 이후 지중해로 진출하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남하 정
     책을 추진하였다.
    ① 17,18세기 : 17세기에 발트 해와 시베리아 방면으로,18세기에는 흑해로 진출하였다.
    ② 19세기 : 폴란드를 지배하였고,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발칸 반도
        방면으로 남하하여 중앙 아시아와 연해주를 차지한 후, 슬라브 족의 중심 국가로
        발전하였다.
    ③ 크림 전쟁 : 이후 범슬라브주의와 그리스 정교도 보호를 구실로 내세워 오스만 제국
        과 크림 전쟁을 벌였으나, 영국과 프랑스 때문에 실패하였다.

 

 (2) 19세기 이전의 러시아 사회
    ① 서구화 추진 : 17세기 표트르 대제 때 서구화 정책을 추진하여 서유럽의 제도와 지
        식을 수용하였고, 러시아 발전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② 경제적 후진성 : 19세기까지도 농노제가 남아 있어, 러시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
        다.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므로 경제 활동이 미약하여 시민 계급이 성장할 수 없었고,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였다.
    ③ 정치적 후진성 : 전제 정치로 청년 장교들의 자유주의 운동 또한 억압되었다.

 

2. 알렉산드르 2세의 근대화 개혁

(1) 농노 해방령 선포(1861)
    ① 내용 : 러시아 지식인과 농민들의 개혁 요구를 수용하여 약 2,200만 명의 농노들에
        게 법적 권리와 토지 소유를 허가해 주었다.
    ② 영향 : 해방된 농노들이 토지에 대해 국가에 대금을 지불하고, 촌락 공동체인 '미르'
        에 소속되어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다.

(2) 전제 정치의 강화 : 폴란드의 독립 운동을 계기로 다시 전제 정치가 강화되었다.


 

3. 농촌 계몽 운동 확산

(1) 내용 : 러시아 사회의 개혁을 위한 러시아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브 나로드(인민 속
     으로)'를 외치며 농촌에 들어가 농촌 계몽과 사회 개혁을 추진하였다.

(2) 결과 : 농민의 고통과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이후 러시아의 사회 혼란
     이 심화되어 전제 정치가 더욱 강화되었다.

 

 


 19세기 사회의 모습
 
  

1. 이전과 달라진 19세기 사회


(1) 도시 중심의 사회 : 이전의 농촌 기반에서 도시 중심의 사회로 발전하였다.

(2) 개인의 자유와 권리 확대 : 시민 혁명 이후 사회 주도 세력으로 성장한 시민 계층이 정
     치에 참여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기본 권리가 확대되었다.

(3) 교통과 통신의 발달 :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게 되면서 국가 간의 교류가 매우 활발해
     졌다.

(4) 사회 문제의 발생 : 빈부 격차의 심화·열악한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과 생활 환경·공해
     등의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5) 대중 사회의 출현 : 시민 대중의 문화 수준이 향상되고, 그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면
     서 대중 사회가 나타났다.


 

2. 자연 과학의 발달


(1) 배경
    ① 르네상스 시기부터 만들어졌던 인간 중심적이고 현실적인 문화의 특징이 19세기에
        들어와 다양한 방면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②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이 자연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진보를 뒷받침하였다.

(2) 생물학
    ① 다윈의 진화론 : 자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은 자연 도태되어 사라졌고 현존
        하는 생물은 자연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만이 살아 남아 진화해 온 것이라는
        내용이다. 생물학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


        ㆍ크리스트 교의 창조론을 부인하고 종교적 세계관을 붕괴시킨 것이다.
        ㆍ당시 유럽 인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주장이었다.


        ㆍ자연 과학뿐 아니라 사회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어 이후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
           유태인 학살, 인종 차별 등의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이론적 배경으로 악용당하기도 했다. (사회적 Dawinism)


        

이 풍자화는 어떤 의도로 누가 그렸을까 ?

 


    ② 멘델 : '유전의 법칙'을 발표하여 유전학의 시초를 열었다.

(3) 물리학
    ① 뢴트겐 : X선을 발견하여 질병 치료의 획기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② 퀴리 부인 : 라듐을 발견하여 20세기 원자 물리학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4) 기술 분야
    ① 벨 : 전화기를 발명하여 통신 발달에 큰 역할을 하였다.
    ② 에디슨 : 가정용 전구를 발명하여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19세기의 문화
 
  

1. 19세기 문화의 사회적 배경


(1)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산업의 기반이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 변화
     되면서 환경과 생활 방식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2)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계속적으로 산업 혁명이 이어지도록 뒷받침하였다.

(3) 생활의 변화 : 대량 생산된 물품으로 부의 축적이 가속화되고, 생활 수준이 급속하게
     향상되었다.

(4) 자연 과학의 발달 : 많은 자연 과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겨 학문적 발전
     이  이루어졌다.


 

2.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


(1) 등장 배경
    ① 시민 혁명의 성공으로 들뜬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② 인간의 이성만을 강조하는 계몽 사상을 비판하면서 등장하였다.

(2) 특징 : 인간의 감정과 개성, 상상력을 강조하였다.

(3) 문학에 바이런, 음악에 슈베르트, 미술 분야에서 들라크루아 등이 대표적으로 활약하
     였다.

 

Schubert
 

3. 19세기 후반의 사실주의 (Realism)


(1) 등장 배경
    ① 산업 혁명으로 인하여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자, 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② 자연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현실에 대하여 직시하려는 경향을 도왔다.

(2) 특징 : 인간과 사회를 사실대로 묘사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3) 문학에 톨스토이, 미술에 밀레, 쿠르베 등이 대표적이다.

 


밀레의 이삭줍기

 

<영화로 만든 19세기 문학작품들>

적과 흑: 스탕달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제인 에어 :샤롯 브론테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데이비드 카퍼필드: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보이첵:게오르크 뷔히너

테스:토마스 하디

마담 보바리 :플로베르

안나 카레니나:레오 톨스토이

카라마조프가 형제들:도스토예프스키

 

4. 대중 문화의 발달


(1) 문맹 퇴치와 대중 교육의 확산 :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각국의 정부가 문맹 퇴치에 주
     력하자, 영국·프랑스·독일 등의 문맹률이 1850년대의 50% 이상에서 15% 이하로 크
     게 떨어졌다.

(2) 대중 문화의 보급 : 17세기에는 귀족의 문화, 18세기에는 자본가들의 문화에서 19세
     기 후반기에는 일반인들이 대중 교육과 신문 등을 통하여 대중 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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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민혁명과 시민사회의 형성

- 영국 혁명 - 미국 독립 - 프랑스 혁명 - 산업혁명 -

 


 영국 혁명의 배경
 
 
1
. 영국 사회의 변화

(1) 새로운 사회 세력의 대두
    ① 농촌의 변화 : 다른 나라보다 일찍 장원 제도가 무너진 영국에서는 젠트리라는 부
        유한 지주층과 자영 농민층이 성장하였다.
    ② 청교도의 증가 : 농촌의 젠트리와 자영 농민층은 도시의 상공 시민층과 함께 새로
        운 사회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청교도가 많았다.

(2) 젠트리의 성장 : 젠트리는 의회로 진출하여 하원 의원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였는데,
     국왕의 전제 정치와 국교회 강요에 큰 불만을 가졌으므로 이들이 청교도 혁명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2. 스튜어트 왕조의 전제 정치

(1) 성립 :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1세가 영국 왕이 됨으로
     써 시작되었다.

(2) 전제 정치 : 제임스 1세와 뒤를 이은 찰스 1세는 왕권 신수설을 믿어 의회를 무시하고
     세금을 함부로 거두었으며, 청교도를 탄압하고 국교회를 강요하는 등 전제 정치를 강
     화하여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3) 의회의 항거 : 왕의 전제 정치에 대항하여 의회는 권리 청원을 제출하고(1628), 의회
     의 승인 없이는 함부로 과세할 수 없도록 찰스 1세에게 요구하였다.

권리 청원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
ㆍ개인의 집에 병사를 숙박시킬 수 없다.
ㆍ평화시에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다.
ㆍ자의적인 구속이나 투옥을 할 수 없다.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
 

  

1. 공화정을 수립한 청교도 혁명

(1) 청교도 혁명(1642∼1649)

 


    ① 원인 : 찰스 1세가 의회를 해산하고 오랫동안 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전제 정치를

        강화하였다.
    ② 경과 : 왕과 의회의 대립이 심해지는 가운데, 왕이 무력으로 의회를 억압하려 하자 결
        국 내란이 일어났다.
    ③ 결과 :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가 승리한 후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을 수립하
         였다.

(2) 크롬웰의 독재 정치 : 혁명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수습한 후 공화정을 이끌었다.
    ① 중상주의 정책 : 항해법을 선포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해상
        무역을 발전시켰다.
    ② 독재 정치 : 국민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생활을 강요하고 독재 정치를 실시하였다.
    ③ 크롬웰 사후 공화정은 무너지고, 찰스 2세가 즉위하여 왕정 복고가 이루어졌다.

2. 입헌 정치를 수립한 명예 혁명

 



(1) 원인 : 찰스 2세와 뒤를 이은 제임스 2세는 전제 정치를 강화하고, 가톨릭 교회를 부흥
     시키려 하였다.

(2) 전개 : 의회는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키고, 그의 딸 메리와 사위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추대하였으며, 이들에게 권리 장전을 제출하여 승인받았다(1688).

권리 장전
ㆍ의회의 승인 없이 법을 제정하거나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없다.
ㆍ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
ㆍ의회의 승인 없이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다.
ㆍ의회의 선거는 자유로워야 한다.
ㆍ의회 내에서의 토론은 자유로워야 한다.
ㆍ의회는 자주 소집되어야 한다.


(3) 결과와 영향

    ① 입헌 군주국의 성립 :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한 권리 장전에 의해 세계 최초로
        의회 중심의 입헌 군주국이 수립되었다.
    ② 영국의 발전 : 다른 나라보다 1세기 이상 앞서 혁명을 치룬 결과 정치적 안정을 이
        루고 이를 바탕으로 식민지 개척과 산업 발전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미국 독립 혁명의 배경
 
  

1. 영국의 식민지 정책

(1) 영국인들의 식민지 개척
    ① 식민지 이주 : 17세기 이래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청교도와 무역이나 개
        척 사업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이주하여 북아메리카의 동부 연안
        지대에 13개의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② 초기의 방임 정책 : 영국은 식민지마다 총독을 임명하였으나, 실제로 간섭하는 일은
        별로 없었으며, 13개 식민지마다 의회를 통한 자치를 허용하였다.

 

 영화: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1995)



(2) 식민지 정책의 강화
    ① 배경 : 프랑스와의 전쟁 이후 미시시피 강 동쪽의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되자, 이를 유
        지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② 중상주의 정책 강화 : 영국은 재정 마련을 위해 식민지에 중상주의 정책을 강화하여,
        공문서와 출판물에 인지를 사서 붙이게 하고, 설탕, 종이, 차 등의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영화: The Last of the Mohicans(1992)

 


2. 식민지 주민의 반발

(1) 중상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
     ① 과세에 대한 반발 : "식민지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본국의 의회는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② 식민지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친 영국은 차세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지하였다.

(2) 보스턴 차 사건(1773) : 차세를 반대하던 군중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영국
     상선을 습격하여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 정부는 보
     스턴 항구를 봉쇄하고 강경한 억압 조치를 취하였다.

 

미국의 독립
 

  

1. 미국의 독립 혁명

(1) 경과 : 1775년에 보스턴 근교에서 식민지군과 영국군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 독립 전
     쟁으로 발전하였다.

(2) 독립 선언서 발표(1776) : 식민지인들은 워싱턴을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미
     국 혁명의 이념을 반영한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이 선언서에는 로크의 자연권
     사상과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아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과 국
     민 주권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독립 선언서의 내용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은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와 같이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특정한 권리를 신에게서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간은 정부를 만들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경우에는 국민이 언제나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할 수 있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권리가 있다.

 


(3) 식민지 주민의 승리 : 전쟁은 처음에 독립군에게 불리하였으나, 영국의 경쟁국인 프
     랑스와 에스파냐 등의 지원에 힘입어 식민지가 승리하였고, 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을 승인 받았다.


 
2. 아메리카 합중국(미국)의 탄생
(1) 아메리카 합중국 성립 : 독립을 쟁취한 식민지 대표들은 아메리카 합중국 헌법을 제
     정하고, 이 헌법에 따라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2) 헌법의 특징 :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과 삼권 분립의 원칙을 명백히 규정하였으며, 대
     통령이 이끄는 연방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면서도, 각 주의 자치권을 인정하였다.
(3) 의의 :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민주 공화국을 탄생시킨 미국 혁명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혁명의 배경과 시작
 
  

1. 프랑스 혁명의 배경

(1) 구제도의 모순 : 프랑스 혁명 전의 사회는 신분제 사회였다.
    ①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은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면서 동시에 많은 특
        권을 누렸다.
    ②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제3신분인 평민은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면서
        도 정치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2) 시민 계급의 성장 : 계몽 사상과 미국 혁명의 영향을 받은 시민 계급은 구제도의 모
     순을 비판하면서 사회 개혁을 요구하였다.
(3) 국가 재정의 위기 :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① 루이 14세 이래 계속된 전쟁과 왕실의 사치로 재정은 파산 위기에 있었다.
    ② 삼부회 소집(1789) :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왕이 소집하였으나, 투표 방식
        을 둘러싸고 평민 대표가 반발하였다.


 

2. 혁명의 발발

(1) 혁명의 발단
    ① 국민 의회 결성 : 평민 대표들은 국민 의회를 결성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려고
        하였다.
    ② 바스티유 감옥 습격(1789) : 국왕이 국민 의회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려고 하자, 파
        리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나, 전제 정치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이를 계기로 혁명이 전국에 확산되었다.



(2) 국민 의회의 활동
    ① 봉건적 특권의 폐지 선언 : 구제도와 관련된 각종 봉건적 특권을 폐지하였다.
    ②
인권 선언 발표(1789) : 인간의 자유, 평등, 국민 주권, 재산권 등을 선언한 것으로
        혁명의 기본 정신을 표명하였다.

 

 

1.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2. 모든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보존함에 있
    다. 그 권리는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
3. 모든 주권의 원천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③ 입헌 군주제 헌법을 제정하고 많은 개혁을 추진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경과와 의의
 
  

1. 혁명의 과격화

(1) 배경 : 루이 16세가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려다 실패하고, 이웃 나라 군주들의 간섭으로
     전쟁이 일어나자 혁명은 더욱 과격해졌다. 전세가 불리해지고,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면
     서 파리에서 폭동이 발생하였다.

(2) 국민 공회의 성립
    ① 제 1 공화정 선포(1791) : 선거에 의해 새로 구성된 국민 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프
        랑스 제1공화정을 선포하였으며,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② 사회의 혼란 : 영국, 오스트리아 등은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공격해 오고, 국내에
        서도 혁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어 사회가 극도로 불안해졌다.

(3) 로베스피에르의 정치
    ① 개혁 정치 : 사회가 극도로 불안해지자 혁명 정부를 조직하여 농민의 봉건적 부담을
        폐지하고, 물가를 억제하는 등 혁신적 개혁을 단행하였다.
    ② 공포 정치 : 혁명 정부는 수많은 반대파를 처형하는 공포 정치를 실시하였다.


2. 혁명의 종결

(1) 총재 정부의 수립
    ① 배경 : 공포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국민 공회 내의 반대파가 로베스피에르를
        독재자로 몰아 처형하였다.
    ② 성립 : 국민 공회 내의 온건파가 새로이 헌법을 제정하여, 5인 총재 정부를 수립하였
         다.

(2) 통령 정부의 수립 : 총재 정부가 무능하자, 혁명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유명해진 나폴
     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 정부를 세웠다(1799).

3. 혁명의 의의

(1) 전형적인 시민 혁명 : 절대 왕정과 구제도를 타파하고, 근대 시민 사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혁명 이념의 확산 : 프랑스 혁명 이념인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널리 확산시켰다.

  
나폴레옹과 유럽
 

 

1.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

(1) 제1제정(1804) : 국민 투표로 황제가 되어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였다. 이에 프랑스
     제1 공화정은 끝나고 제정이 시작되었다.

 


(2) 나폴레옹의 개혁 정치 :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나폴레옹 법전
     을 편찬하여 법 앞에 모든 국민의 평등을 보장하는 등 과감한 정책을 폈다.

(3) 정복 전쟁 : 내정 개혁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은 후 유럽 제패의 길로 나섰다.
    ① 영국과의 싸움 : 영국 중심의 대프랑스 동맹 결성으로 먼저 영국을 침공하였으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패하였다(1805).
    ② 대륙 제패 :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여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켰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승리하여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맺게 함으로써 유럽 대륙을 정복하였다.

 

 

 

 

 

 2. 나폴레옹의 몰락

(1) 대륙 봉쇄령(1806) :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륙 국가들이 영국과 통상을 하지 못
     하도록 대륙 봉쇄령을 내렸으나, 영국보다는 오히려 대륙 국가들이 더 큰 고통을 겪
     었다.

(2) 러시아 원정의 실패(1812) : 대륙 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서 70만 대
     군을 이끌고 모스크바까지 원정했으나 러시아의 저항과 추위로 후퇴하였다.

 영화: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 1956)

 

(3) 나폴레옹의 유배 : 러시아 원정 실패를 계기로 유럽 동맹군이 나폴레옹을 격파하고,
     엘바 섬으로 귀양 보냄으로써 나폴레옹 시대는 막을 내렸다(1814).

(4) 나폴레옹의 재기 : 다음 해 엘바 섬을 탈출하여 재기하려 했으나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전으로 실패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다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3.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1)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 : 프랑스 혁명 정신에 어긋나는 독재자이자 유럽을 전쟁의 소
     용돌이에 빠뜨린 정복자였다.

(2) 나폴레옹 전쟁의 의의
    ① 봉건 제도의 폐지와 같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업적들을 유지, 계승하는 데 기여
        하였다.
    ② 프랑스 혁명 이념(자유, 평등, 박애)을 전 유럽에 전파하여 유럽 각국에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을 촉진시켰다.

 


 영국의 산업 혁명
 
  

1. 산업 혁명의 배경

(1) 산업 혁명의 뜻 :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혁신에 의해 야기된
     산업상의 큰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ㆍ경제적 변화를 말한다.

(2)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된 이유
    ① 근대적 산업의 발달 : 일찍부터 모직물 공업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
        하였다.
    ② 자본 축적 : 광대한 식민지를 상대로 한 해외 무역이 활발하여 많은 자본을 축적하
        였다.
    ③ 풍부한 노동력 : 인구 증가, 농촌 인구의 도시 이동으로 산업 활동에 필요한 노동력
        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④ 풍부한 지하 자원 : 새로운 산업 발전에 필요한 석탄, 철 등의 지하 자원이 풍부하
        였다.
    ⑤ 정치적 안정 : 명예 혁명 이후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
        다.

 


(3) 산업 혁명의 시작(18세기 후반)
    ① 18세기에 와서 국내외에서 면직물의 수요가 급증하자 대량 생산 방법을 찾게 되었
         다.
    ② 상품 수요에 맞게 기계를 발명하고 동력을 개발하여 생산 방법이 혁신적으로 변화
        하였다.


 

2. 새로운 기계의 발명


(1) 면직물 공업의 발달 : 산업 혁명은 면직물 공업 부문에서 시작되었다.
    ① 방적기(실을 짜는 기계)의 발명 : 질기고 고운 실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② 방직기(직물을 짜는 기계)의 개량 : 동력으로 증기 기관을 이용하여 면직물을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2) 와트의 증기 기관 발명(1765) : 적은 연료를 가지고 강한 힘을 내는 증기 기관을 발명
     했다.

 

(3) 공장제 기계 공업의 발달 : 증기 기관이 공장에 보급되어 공장제 기계 공업이 급속히
     발달하고, 면직물 공업ㆍ제철 공업ㆍ기계 공업에 혁신을 가져왔다.


 

3. 교통과 통신 기관의 발달


(1) 교통 기관의 혁신 : 증기 기관은 기관차와 기선의 발명에 영향을 주어 교통 기관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① 증기선 발명 : 19세기 초 미국의 풀턴이 증기선을 만들어 허드슨 강을 항해하는 데
        성공하였다(1807).
    ② 증기 기관차 발명 : 영국의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차를 발명(1814)하여 철도 시대의
        막을 열었다.

(2) 통신 기관의 발명 : 유선 전신(1843, 미국의 모스), 전화(1876, 미국의 벨), 무선 전신
     (1896, 이탈리아의 마르코니)이 발명되었다.

(3) 교통과 통신 발달의 영향
    ① 산업 발달 촉진 : 원료와 제품의 빠른 수송을 가능하게 하여 산업 발달을 촉진시켰
        다.
    ② 국제화 시대 개막 : 세계의 거리를 단축시켜 국제화 시대의 막을 열게 하였다.

 

 

 산업 혁명의 확산과 사회 변화
 
  

1. 다른 나라의 산업 혁명


(1) 산업 혁명의 확산 : 산업 혁명으로 세계의 공장이 된 영국은 국제 경제를 이끌어 갔
     으며, 산업 혁명은 유럽 각국 및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① 프랑스 : 석탄이 풍부하지 않아 제철 공업보다는 섬유 공업에 주력하였다.
    ② 미국 : 자원이 풍부하여 면직·금속·기계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남북 전쟁 이후에 자
        본주의를 확립하였다.
    ③ 독일 : 풍부한 석탄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제철·기계·화학 공업이 크게 성장하
        여, 20세기 초 유럽 최대의 공업국으로 성장하며 영국과 경쟁하였다.
    ④ 19세기 후반 :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모두 산업 혁명의 길로 들어섰으며 러시아, 일
        본 등으로 확대되었다.

(2) 제 2차 산업 혁명 : 19세기 후반, 화학·전기 공업 등 새로운 산업 분야가 개척되었고,
     산업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2. 산업 사회로의 변화


(1)산업 혁명의 결과
    ① 공장제 기계 공업 발달 : 수공업에서 기계를 이용한 대량 생산 방식으로 변하였다.
    ② 산업 자본주의의 확립 : 경제 생활이 발전하였고, 물질 생활이 풍부해지고 편리해
        졌다.
    ③ 경제 구조의 변화 : 1차 산업보다 2·3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져 농업 사회는 산업
        사회로 변하였다.
    ④ 인구의 증가(19세기) : 1세기 동안 유럽은 2배 이상, 영국은 3배 이상 인구가 증가
        하였다.

(2) 산업 사회의 문제점
    ① 각종 문제 발생 : 산업 사회가 되면서 도시 문제, 노동 문제 등 사회 문제가 발생하
        였다.
    ② 노동 운동·사회주의 운동 발생 : 산업 사회의 문제점으로 인해 노동 운동과 사회주
        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각국의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Posted by silb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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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양 근대사회의 시작>

- 르네상스 - 종교개혁 - 신항로 개척과 유럽의 팽창 - 절대왕정의 성립과 발전 - 17/18세기의 유럽 문화


 르네상스의 발생과 전파
 
  

1. 르네상스의 발생

(1) 르네상스
    ① 뜻 : 르네상스란 부활, 재생이라는 뜻의 프랑스 말로, 14∼16세기에 그리스·로마 문
        화가 부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문, 예술, 사상 등에서 발생한 새로운 문화 운동을
        말한다.
    ② 시작 :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알프스 이북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

(2)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
    ①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 : 이탈리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도시와 상업이 발달하였
        으며, 도시들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② 로마 문화의 유산 :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유산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③ 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 :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교회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중세 문화
        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찾으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3)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내용
    ① 특징 : 인간의 아름다움과 감정,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다.
    ② 미술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라파엘로의 '성
        모상'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③ 문학 : 페트라르카는 인간의 사랑과 자연을 노래한 시를,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통
        해 세속 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였다.

 


모나리자

 

2.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

(1) 특징 : 사회나 종교를 비판하는 개혁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2) 내용
    ①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 '우신 예찬'에서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
        였다.
    ② 영국의 토머스 모어 : '유토피아'에서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이상 사회를 제
        시하였다.

 

인간과 세계의 재발견
 
  
1. 인문주의

(1) 인문주의
    ① 르네상스의 근본 정신은 인문주의(Humanism)이다.
    ② 본래 그리스·로마의 고전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풍을 의미하던 말에서, 점차
        인간 중심적이고 현세적인 고전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개성과 능력을 강조하고
        인간의 지성과 덕성을 높이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2) 인문주의의 영향 : 인간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발견하였음은 물론이고, 자연에 대한 재
     발견으로 이어져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법칙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져 과학
     과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2. 과학과 기술의 발달

(1)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지동설은 중세 우주관을
     근본적으로 뒤집은 주장으로, 기존의 우주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 갈릴레이 : 망원경을 이용한 관찰을 통해 지동설의 정당성을 확인하였다.

(3)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 많은 책을 짧은 시간에 찍어내게 되어, 새로운 지식과 사상
     을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4) 화약의 보급 : 중국에서 들어 온 화약은 전술의 변화를 가져와 기사 계급의 몰락을 촉진
     하였다.

(5) 나침반 : 신항로의 개척에 기여하였다.


 독일에서의 종교 개혁
 
  

1. 종교 개혁의 배경

(1) 종교적 배경
    ① 가톨릭 교회의 부패 : 로마 가톨릭 교회는 중세 말에 이르러 형식에 치우치고 부패하
        였다.
    ② 비판과 개혁 운동 :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부패한 교회와 성직자의 타락을
        비판하였고, 영국의 위클리프나 보헤미아의 후스 등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성서의 정
        신에 따라 교회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다가 박해를 받았다.

(2) 정치적 배경
    ① 교황권의 약화 : 교황의 아비뇽 유수와 교회의 대분열로 교황의 권위가 계속 약화되
        었다.
    ② 왕권의 강화 : 왕권이 강해지면서 중앙 집권적 통일 국가를 지향하던 각국의 군주들
        은 교회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③ 독일의 정치적 분열 : 중세 이후 300여 개의 영방으로 분열되어 정치 권력이 약했던
        독일은 교황의 간섭이 심했으므로 교황청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종교 개혁이 발생하였다.


 2. 루터의 종교 개혁

 

 



(1) 직접적 계기 :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 개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의
     판매를 허용하였다.

(2) 경과
    ① '95개조 반박문' 발표(1517) : 대학의 신학 교수로 있던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
        표하여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였다.
    ② 루터의 주장 : 인간의 죄로 인해 받아야 할 모든 벌이 교황의 면죄부를 산다고 하여
        면제되지는 않으며, 더 나아가 인간은 선행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과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③ 루터 파와 황제파의 대립 : 교황과 독일 황제는 루터에게 그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강
        요하였으나, 많은 제후와 국민들이 루터를 지지하여 루터 파와 황제파 사이에 오랜

        전쟁이 벌어졌다.

(3) 결과 :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가 성립되어 루터 파 교회가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4) 의의 : 개인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제후와 자유 도시들은 루터 파 교회
     를 선택할 자유를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교회가 정식
     으로 성립하게 되었다.
 

종교 개혁의 확산
 
  
1. 칼뱅의 종교 개혁

 

 



(1) 스위스의 종교 개혁 : 칼뱅은 루터의 교리를 더욱 발전시켜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 개
     혁에 성공하고, 그 곳의 정치와 종교의 지배자가 되었다.

(2) 칼뱅의 사상
    ① 엄격한 생활 요구 : 칼뱅은 루터보다 철저하여 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모든 의식
        의 폐지와 민주적인 교회 조직, 그리고 엄격한 금욕 생활을 주장하였다.
    ② 예정설 : 인간의 구제는 신에 의해 미리 예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는 자기의
        구원을 확신하고 세속적인 직업에 충실할 것을 권고하였다.

(3) 전파 : 칼뱅의 교리는 상공업에 종사하는 상공 시민층의 환영을 받아 프랑스(위그노),
     네덜란드(고이센), 영국(청교도), 스코틀랜드(장로파) 등 서유럽 각지에 전파되었다.

2. 종교 전쟁

(1) 교회의 분열 : 종교 개혁을 계기로 교황의 지배를 받지 않는 루터 파, 칼뱅 파 등 신교
      (프로테스탄트)가 생겨나게 되자, 그들과 구교(가톨릭) 사이에 약 1세기에 걸쳐 종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2)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 : 종교 전쟁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최후의 종교 전쟁
     이다.
    ① 원인 : 칼뱅 파 신교도의 반란(보헤미아)을 독일 황제(구교)가 가혹하게 탄압하자 이
        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되었다.
    ② 경과 :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 주변 국가들이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개입하여
        국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③ 결과 : 독일의 국토가 황폐해지고 인구가 감소되는 등 큰 피해를 남기고, 베스트팔렌
        조약(1648)으로 종결되었다. 이 조약에 의해 칼뱅 파도 종교의 자유를 얻어, 종교 분
        쟁의 불씨가 사라지게 되었다.
    ④ 의의 : 30년 전쟁을 고비로 유럽의 국제 관계는 종교적 요인보다 정치적ㆍ경제적 요
        인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신항로의 개척
 
  

1. 신항로 개척의 배경

(1) 동양에 대한 관심 증대 : 십자군 전쟁 이후 동방 무역이 부활되어 향료, 비단, 보석과 같
     은 동방 물산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동방 견문록'의 영향 :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다녀와서 쓴 '동방 견문록'은 유럽 인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3)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장악 :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지
     중해를 장악하여 동방 무역을 방해하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는 욕구가 한층 강해졌다.

(4) 지리적 지식과 항해술의 발달 :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침반을 항해에 이용하게 됨으로써
     원양 항해가 가능해졌다.


 2. 인도 항로의 발견과 세계 일주

(1) 신항로 발견의 주역 : 신항로 발견에 앞장 선 나라는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여 지중해 무
     역에서 소외되었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였다. 이들은 일찍이 통일 국가로 성장하여 왕
     실의 적극적인 지원이 가능하였다.

(2) 인도 항로의 발견 :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의 남쪽 끝인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함으로써 인도로 가는 동쪽 항로를 발견하였다(1498).

(3)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스파냐의 후원)
    ① 콜럼버스의 항해 :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을 믿고 서쪽으로 항해하여 서
        인도 제도에 도착하였다(1492). 그는 그 후에도 세 차례나 더 이 지역을 탐험하였으
        나 죽을 때까지 그 곳을 인도라고 믿었다.

   ② 그 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인도가 아닌 신대륙임이 확인되어 그 곳을 '아메리
        카' 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화: 1492 콜럼버스 (The Conquest of Paradise 1992)


(4) 마젤란의 세계 일주(에스파냐의 후원)
    ① 마젤란의 세계 일주 : 마젤란은 향료의 주산지인 아시아의 몰루카 제도에 가기 위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였다. 그는 필리핀에서 원주민에게 살해되었으나, 그의 부
        하들이 항해를 계속하여 3년 만에 에스파냐로 돌아옴으로써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
        하였다(1522).
    ② 의의 : 이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인도로 가는 서쪽 항로가 개척되었
        다.

 

 

 

brazil.pptx

유럽 세계의 팽창
 

 1. 유럽 각국의 식민지 개척

(1) 포르투갈의 세력 확대 : 브라질을 식민지로 건설하였고, 아시아에서 향료 무역을 독점
     하였다.

(2) 에스파냐의 세력 확대 : 중·남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그 곳의 원주민 문명
     인  아스테크·잉카 문명을 파괴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파괴

멕시코 지방에서는 6세기경에 마야 문명이 성립하였고, 이어 북방으로부터 내려
온 아스테크 인이 이를 계승하여 발전시켰으나 1521년 에스파냐의 코르테스에
의해 정복, 파괴되었다.
페루 지방에서는 13세기 이후 잉카 제국이 번성하였으나, 역시 에스파냐의 피사
로에 의해 정복됨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3)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도 식민지 건설에 참여함으로써 유럽 우위의 세계사가 시작되
     었다.

 

 

<라스트 모히칸> 줄거리 보기

http://ggygy.blog.me/220604814790


 
http://tsilberne.tistory.com/4


http://tsilberne.tistory.com/5

<포카혼타스>

https://namu.wiki/w/%ED%8F%AC%EC%B9%B4%ED%98%BC%ED%83%80%EC%8A%A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14&contents_id=37923

 

 

 


2. 유럽 사회의 변화

(1)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성립 : 지구상의 여러 지역과 문명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맺게
     되었다.

(2) 대서양 무역의 발달 : 무역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대서양 연안
     의 국가들이 번영하고, 지중해 주변 국가들이 쇠퇴하게 되었다.

(3) 새로운 산물의 전래 : 동양으로부터 향료, 후추, 비단 등이 들어오고, 신대륙으로부터
     담배 코코아, 감자 등이 유입되어 유럽 인의 일상 생활을 바꾸어 놓았다.

(4) 가격 혁명 :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은이 대량 반입되어 물가가 크게 상승하였다.

(5) 상업 혁명 : 새로 생긴 넓은 시장과 값싼 원료의 공급으로 근대적 기업이 성장하고 금
     융업과 상공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이로써 중세적 길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발달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절대 왕정과 중상주의
 
  

1. 절대주의와 왕권 신수설

(1) 절대주의
    ① 의미 :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에 나타난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
        를 말한다.
    ② 성립 : 중세의 지방 분권적인 봉건 체제가 무너지면서 왕권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과
        국가 통일이 진행되어 16세기에 절대주의가 성립하였다.

(2) 왕권 신수설 : 왕권은 신이 부여한 신성 불가침의 권리이므로 국민들은 이에 절대 복종
     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절대주의를 뒷받침해 준 사상이었다.

(3) 왕권 강화 수단
    ① 관료제와 상비군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신해서 행정 업무를 담당할 관료
        들을 임명하고, 강력한 왕권을 위하여 언제나 동원할 수 있는 군대인 상비군을 설치하
        였다.
    ② 상공 시민층과 제휴 : 왕은 관료와 상비군 유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상공 시민층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였고, 상공 시민층은 국내외 시장 개척을 위해 강력한 왕의 보호
        가 필요하였다.

 

 

 

2. 중상주의 정책과 식민지 쟁탈

(1) 중상주의 : 국가가 경제 활동을 지원하면서 이를 엄격히 통제한 정책을 말한다. 중상
     주의의 목표인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여 수출을 장려하고 수
     입을 억제하였다.

(2) 식민지 쟁탈 : 수출을 많이 하려면 상품 시장과 값싼 원료 공급지가 되는 식민지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였으므로, 국가 간에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절대 왕정
 
 
1. 에스파냐의 절대주의

(1) 펠리페 2세 : 아메리카 식민지와 유럽 여러 지역에 영토를 가진 펠리페 2세는 식민지로
     부터 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였다. 펠리페 2세 때 에스
     파냐는 무적 함대를 만들어 세계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전성기를 이루었다.

(2) 에스파냐의 쇠퇴
    ① 취약한 경제 기반 : 국내 산업에 바탕을 두지 못하고 식민지 약탈에만 의존하여 경제
        기반이 취약하였다.
    ② 네덜란드의 독립 : 강압적인 가톨릭 종교 정책에 맞서 네덜란드가 독립함으로써 심한
        타격을 받았다.
    ③ 무적 함대의 패배 : 네덜란드를 후원한 영국을 응징하고자 무적 함대를 파견하였다가
        오히려 패배하였다.

2. 영국의 절대주의

 

 


(1) 영국의 절대주의 : 헨리 8세 때에 틀이 잡히고, 엘리자베스 1세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
     였다.

(2) 엘리자베스 1세의 정치 : '짐은 영국과 결혼하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국가에 헌신하면
     서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열었다.
    ① 영국 국교회 확립 : 신교적인 국교회를 확립해 국민적 통합을 꾀하였다.
    ② 해상권 장악 :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를 격파하고,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③ 식민지 확대 :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였고,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인도 진
        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④ 중상주의 정책 : 국내의 모직물 공업을 육성하고, 해외 무역을 장려하였다.

 영화:Elisabeth(1998)

 

 


3. 프랑스의 절대주의

 

 

 

(1)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치 : "짐은 곧 국가다."
    ① 왕권 신수설을 신봉하여 자신을 태양에 비유하였다.
    ② 콜베르를 등용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였고, 강한 군대를 양성하였다.
    ③ 궁정 문화 발달 :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문학과 예술을 장려하였다.

 

 영화 :왕의 춤 (Le Roi Danse,2000)



(2) 쇠퇴 : 잦은 전쟁으로 인한 국력 소모와 낭트 칙령을 폐지하고 신교도들을 박해한 결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많은 위그노들이 박해를 피해 해외로 망명함으로써 프랑스의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4. 프로이센의 절대주의

(1) 독일의 분열 : 신성 로마 제국으로 불렸으나 실제로는 300여 개의 지역 국가(영방 국가)
     로 분열되어 있었다.

(2) 프로이센의 흥기 : 17세기에 베를린 지방에서 일어나 강대국으로 발전하여 프리드리히
     대왕 때 융성하였다.
    ① 영토의 확장 : 오스트리아에 승리하여 산업이 발달한 슐레지엔 지방을 차지하였다.
    ② 계몽 군주 :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은 프리드리히 대왕은 스스로 '국가 제일의 심부
        름꾼'이라 자처하면서, 제도를 정비하고 산업을 장려하였다.

5. 러시아의 절대주의

(1) 절대주의 확립 :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 때 확립하였다.
    ① 서유럽화 정책 : 귀족과 교회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서유럽의 문화와
        제도를 도입하여 근대화에 힘썼다.
    ② 영토 확장 : 시베리아를 경영하고, 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을 이겨 발트 해 진출의 발판
        을 마련하였다.

(2) 예카테리나 2세 : 18세기 후반 흑해 연안까지 진출하였고,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점령하였다.


 근대 과학과 근대 철학
 
  

1. 근대 과학의 발전

(1) 과학 혁명 :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근대 과학은 천재의 세기라고 불리는 17세기 이래로,
     자연 과학의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자연 과학의 획기적 변화와
     발전을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① 케플러 : 천체 운행의 법칙을 발견하여, 지동설을 보다 더 정확하게 제시하였다.
    ② 갈릴레이 :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하여 지동설의 정당성을 증명하였
        다.
    ③ 뉴턴 :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그에 앞선 발견들을 하나의 법칙으로 통합
        하여 우주가 통일적인 법칙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새로운 근대적 우주관과 기계론적
        자연관을 확립하였다.

(2) 18세기 과학의 발달
    ① 화학 :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라부아지에가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② 식물 : 스웨덴의 린네가 식물 분류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③ 의학 : 영국의 제너가 종두법을 발견하여 예방 의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2. 근대 철학의 발전

(1) 배경 : 근대 과학의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17세기에 그 토대가 확립되었다.

(2) 경험주의 철학 : 영국의 베이컨은 모든 지식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경험주의 철학을 주
     장하였고,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귀납법을 주장하여 자연 과학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3) 합리주의 철학 : 프랑스의 데카르트는 경험보다 이성을 중시하였다.

(4) 독일의 칸트 :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을 저술하여 경험주의 철학과 합리주의 철학을 종
     합하였다.

(5) 자연권 사상 : 영국의 로크는 생명·자유·재산권을 인간의 자연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근
     대 자유주의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근대 사상과 예술의 발전
 

  
1. 새로운 사상의 출현

(1) 계몽 사상 : 근대 과학과 합리주의 철학, 로크의 사상 등의 영향을 받아 18세기 프랑스
     에서 발달하였다.
    ① 특징 : 이성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여 그것을 사회에 잘 적용한다면 인류 사회
        가 무한히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이성에 어긋나는 미신과 무지를 배격하고,
        불합리한 제도와 전통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② 대표적 사상가
        ㆍ몽테스키외 : 프랑스 사람으로, 삼권 분립을 주장하였다.
        ㆍ루소 : '사회 계약설'을 주장하여 국민 주권설을 내세우고,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
            다.
    ③ 영향 : 계몽 군주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 자유 방임주의 경제학
    ① 배경 :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강조하는 경제 사상이 대두하였다.
    ② 애덤 스미스 :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국가 간의 자유 무역을 주장하여 자유주
        의 경제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2. 바로크 양식과 고전 문학

 

 


(1) 바로크 양식(17세기) : 화려하고 웅장하여 절대 왕정의 권위를 높이려는 시대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바흐·헨델의 음악이 대표적이다.

(2) 로코코 양식(18세기) : 바로크 양식이 쇠퇴하고 섬세하고 우아한 로코코 양식이 나타났
     다.

(3) 고전파
    ① 고전 음악 : 모차르트, 베토벤이 완성하였다.
    ② 고전 문학 :영국의 디포('로빈슨 크루소')와 스위프트('걸리버 여행기') 등이 활동하
        였고, 독일의 괴테('파우스트')가 고전 문학을 집대성하였다.

 영화: Amadeus(1984)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14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4)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524

 

 

Posted by silberne
,

근대/영화 5

근대:영화 5

(프랑스혁명-시민 예술-나폴레옹 전쟁-18세기 연애 이야기)

 

프랑스  대혁명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13&docId=1007126&mobile&categoryId=192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9329&cid=40942&categoryId=31787

 

게오르크 뷔히너: 드라마  <당통의 죽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3697&cid=41773&categoryId=41779&mobile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30640&mobile&cid=60608&categoryId=60608

 

https://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4%E7%C5%EB%C0%C7+%C1%D7%C0%BD&x=0&y=0

 

당통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598

 

스탕달 소설: <적과 흑> : 나폴레옹 실각 이후 왕정복고 시대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69&docId=892680&mobile&categoryId=1086

 

<프랑스혁명 비디오 보기>

(1)  https://www.youtube.com/watch?v=suhHD_wfqaw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도입에 맞설 만큼 인류 역사의 분기점이 된 사건, 그것이 곧 프랑스 대혁명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회는 봉건체제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게 되고 인간이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 신념이 과도한 에너지를 갖게 되면서 대중의 폭력을 인정하는 끔찍한 하나의 혁명의 양식을 선보이게 된다. 혁명은 군주의 전제정치를 종식시킬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초유의 가공할 유혈을 경험한다. 루이 16세의 실정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도 혁명의 발발에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신선한 목소리로 다가오던 계몽사상은 혁명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자유와, 운명 주권론, 특히 평등을 옹호하는 볼테르와 루소의 사상이 사회 곳곳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귀족적인 생활방식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대의기구인 삼부제는 귀족과 성직자, 평민의 대표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 대표가 귀족과 성직자 대표와 동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민 대표들은 1789년 6월 20일 테니스코트 선언을 통해 국민의회를 결성하고 평등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기까지 투쟁을 그치지 않을 것임을 선포한다. 이들은 머스킷 총을 탈취하고 화약을 구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자칭 자유 언론 ‘인민의 벗’의 발행자 ‘마라’는 이때 더 많은 피를 흘릴 것을 선동한다. 혁명은 이렇게 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국민의회가 왕비의 본국인 오스트리아가 쳐들어 올 것에 대비해 선전포고를 내리면서 프랑스는 이제 안팎으로 격렬한 전쟁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된다.

(2) https://www.youtube.com/watch?v=oLvdP2y4fnU

1792년 8월, 폐위 당한 루이 16세는 감옥에 갇히고,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자코뱅당은 정부의 지배권을 두고 의회 온건파인 지롱드당과 일전을 치르게 된다. 수많은 반혁명세력을 처단하기 위해 단두대, ‘기요틴’이라는 새로운 처형장치가 등장한다.
혁명지도자 로베스피에르가 내부의 적을 소탕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그의 정적인 당통은 국경에서의 전쟁에 무게를 두고 참전을 호소한다. 자연히 두 사람의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패이기 시작한다. 한편 파리에서는 귀족에 대항하는 평민들이 스스로를 ‘쌍낄롯’이라 칭하며 감옥을 습격해 즉결재판을 통해 대대적인 살육을 일삼는다. (9월학살)
청렴결백을 기치로 내세웠던 혁명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위기를 느낀 나머지 공포정치를 시작한다. 루이 16세는 기요틴에서 처형되고 ‘적자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근친상간 등 온갖 혐의를 쓰고 재판에 회부되어 국고 탕진죄와 반역죄로 남편과 같은 운명에 처한다. ‘인민의 벗’을 발행하며 폭력을 선동하던 마라는 폭력을 부추긴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여성 자객에게 살해당하면서 예수와 같은 순교자로 인정받는다.
온건한 지롱드당이 자코뱅당에 맞서서 폭력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두 혁명 세력간의 골은 깊어진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정적인 당통을 단두대에 보내지만 그 역시 공포정치와 독재로 인해 1794년 7월 테르미도르의 반동 사건으로 처형당하고 자코뱅당도 몰락한다.
테르미도르파는 혁명정부를 개편하고 2원제 의회와 5명의 총재로 구성된 정부를 발족시킨다.
이로서 혁명은 수많은 사람들의 유혈로 얼룩지면서 절대왕정 체제를 타파하고 개인의 소유를 기초로 하는 부르주아, 근대사회를 성립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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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MOZART)-불멸의 연인(BEETHOVEN)

나폴레옹 - 전쟁과 평화

위험한 관계-발몽-스캔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텔(스위스 독립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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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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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 음악과 사회변화 -

 

 

 

(1) 18세기 중엽 이전

11세기 초: 5선 악보 정착

 

<중세시대>: 기독교 예배용 음악. 성악곡 위주 (신이 만든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

(교회 합창단은 오직 남성으로 구성)

그레고리안 성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4 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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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이후: 근대음악 시대

 

<르네상스>

 

부유해진 신흥상인 + 절대왕권 군주의 후원 -----> 종교로부터 해방된 음악

 

<바로크 궁정음악>

 

16세기-18세기 중반. 절대군주의 궁에 소속된 작곡가. 주문에 의한 작곡. 화려한 세속음악. 새로운 악기 개발. 개성적, 강렬한 소리의 악기(기악곡의 해방) Bach, Händel, Vivaldi

<오페라>

16세기말 서양 근대의 태동과 함께 발생.(163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오페라 하우스) 새로운 장르 - 새로운 공연장 - 티켓만 사면 누구나 입장 가능. 귀족과 평민이 한 장소에서 대등하게 관람. ------->> 200년 후 시민혁명의 씨앗. 신흥 부르주아에 의한 귀족문화 수입, 계승, 발전 시도.

(2)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 민중세력 신장-계몽주의 사상-민중도 즐기는 희극 오페라-음악에 감정을 담아 표현-피아노 보급(크고 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 -오페라하우스 모방- "콘서트 concert" (새로운 연주형식)-장식적, 화려한 형식 대신-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 사용-논리적 진행(소나타 형식)

중심도시: 비엔나. 귀족사회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대. Haydn, Mozart :고전주의 시대.

(3) 19세기 전반

시민사회 발전 -청중의 폭과 연주의 규모 확대 > 교향곡, 협주곡

귀족 모방-엘리트, 동호인 중심의 Salon 유행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귀족에게 봉사하는 음악 탈피> 작곡가 자신의 개성적 감정 표현, 자신의 고유한 내면세계 표출.

이탈리아: 주로 오페라 위주/

독일: 기악곡, Lied

부유한 중산층 가정: 피아노 보급. 교습 유행. 화려한 연주 인기.

Beethoven, Schubert, Mendelssohn, Schumann, Chopin, Berlioz, Liszt, Wagner. 낭만주의 음악

(4)19세기 후반 오페라 전성기: 신화 전설의 영웅이 아닌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의 현실 이야기:

Verdi (Rigoretto- Il Trovatore- La Traviata- Aida- Otello)

Puccini (Tosca-Madame Butterfly-Turandot)

Bizet (Car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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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 베토벤 - 오페라에 대한 상식

OPERA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854&cid=59001&categoryId=59009

 

 

 

 



영화 :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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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과 시민사회의 형성>

- 영국 혁명 - 미국 독립 - 프랑스 혁명 - 산업혁명 -


특히 프랑스혁명 설명 보기(영어 site) :

http://www.historywiz.org/frenchrev.htm





로베스피에르


단두대는 인도주의 정신의 산물이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6&dir_id=614&docid=117494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XmmBPf0LGTgsgwFnYgJCI/pkaPUbFZ3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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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불멸의 연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524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4093

베토벤 site:http://www.raptusassociation.org/index.html

 

베토벤 <불멸의 연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524

 

교향곡 5번 듣기 http://www.goclassic.co.kr/basic/199903.html#Mpeg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이 군인들에게 인기있는 이유? (승리 VICTORY의 첫 글자 V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http://www.mykit.com/kor/ele/morse.htm

 

베토벤 교향곡 제 9번(합창)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413&cid=59000&categoryId=5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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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

 

다비드 그림:

<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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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갈로: 나폴레옹 (전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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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카의 섬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왕정 정치에 실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있던 그는 형 조셉의 부름을 받는다. 물롱이 영국인에게 점령당하자 조셉은 나폴레옹을 물롱으로 보내 다시 탈환하게 한다. 나폴레옹은 그곳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 인정을 받는다. 루이 18세를 내쫓고 들어선 집정관은 지도력의 결핍으로 뒤뚱거리기 시작하고 프랑스 국민은 강한 지도자를 원한다. 이를 눈치챈 나폴레옹은 집정관이 자신을 부를 대까지 기다린 후 마침내 최고 통치자의 자리로 올라선다. 곧이어 그는 스스로를 황제로 임명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황제 대관식에 로마 교황까지 초청한다. 한편 조세핀이라는 미망인을 사랑하게 된 나폴레옹은 6살이나 나이가 많은 그녀와 결혼한다. 조세핀은 끊임없이 젊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지만 나폴레옹은 그녀를 내치지 못한다. 그후 그는 유럽을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쟁을 계속한다. 그러나 전쟁에 지친 프랑스국민들은 나폴레옹을 폐위시키고 엘바섬으로 유배시킨다. 돌아온 루이 18세의 탐욕스러움과 혼란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옹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되고 이를 눈치 챈 나폴레옹은 복귀한다. 그가 돌아오자 전세계는 프랑스를 향해 포문을 열게 되고 그는 전유럽에 맞서 단신으로 싸운다. 그러나 워털루전쟁을 고비로 패배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다시 유배되고 만다. 나폴레옹을 두려워한 유럽은 그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도록 세인트 헬레나섬에 붙잡아 두었고 위대한 영웅은 이 곳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나폴레옹의 가족 관계, 유년 시절의 학교 생활, 폴롱 전투의 승리, 왕당파 봉기 진압, 조제핀과의 사랑과 결혼, 이태리 진군, 이집트 원정, 황제 대관식, 아우스테를 리쯔 전투의 승리, 러시아 원정 실패, 황제폐위, 엘바섬으로 유배, 워털루 전투의 패배, 나폴레옹의 종말 등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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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서곡 [, 1812 Overture]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관현악소품.
작곡 표트르 차이코프스키
종류 관현악소품
제작연도 1880년

작품번호 49. 1880년 카멘카에서 작곡했고, 1882년 모스크바산업예술박람회 개막 축하연에서 초연되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음악협회 설립자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ein)의 권유로 작곡했으며, 규모가 큰 일종의 묘사음악이다.

일찍이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 중에 있었던 보로디노전투에서 러시아가 나폴레옹에게 거둔 승리를 오케스트라로 표현한 것이다. 현악기로 연주되는 라르고의 성가, ‘신이 너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로 시작되며, 대포소리와 프랑스 및 러시아 국가를 삽입하여 전투를 벌이는 두 나라 병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작곡가 자신은 이 곡의 음악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는데,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여러 지휘자들에 의해 음반으로 녹음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자신의 평가보다는 뛰어난 작품임이 확실하다. 기교가 매우 뛰어났던 차이코프스키는 프랑스에 대한 러시아의 승리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5개의 주제가 소재로 사용되는데 그 하나는 프랑스 국가인 라마르세예즈이고 나머지는 러시아의 것이다. 다시 말해 4개의 주제가 번갈아 나온 후 라마르세예즈를 침묵시킴으로써 러시아의 승리를 묘사한다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은 패주하는 적의 귓가에 대포소리와 러시아국가가 더블포르티시모로 힘차게 울려퍼진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향토색 짙은 가락과 민요를 바탕으로 러시아적인 애수와 격정을 표현했으며, 특히 독일 고전파와 낭만파의 형식을 계승했다.

1812년

오케스트라 연주 실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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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작: 톨스토이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유럽 전역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그림자를 몰고 다니는 인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나라는 러시아, 그리고 영국 뿐이었다. 빛나는 태양 아래 러시아의 날씨는 더없이 쾌청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저멀리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모스크바의 거리는 신나는 행진의 열기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19세기초 불란서의 맹공을 받게 된 제정 러시아의 삐에르(Pierre Bezukhov: 헨리 폰다 분)는 나폴레옹을 숭배한다. 청순한 나타샤(Natasha Rostov: 오드리 헵번 분)를 사랑하는 삐에르. 그의 재산을 탐낸 크라킨(Kuragine: 툴리오 카미나티 분) 공작은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는데 성공한다. 나타샤의 오빠 니콜라스(Nicholas Rostov: 제레미 브렛 분)는 전쟁 중 도망쳐오고, 안드레이(Prince Andrei Bolkonsky: 멜 페러 분)는 전쟁의 현실을 목격하고 돌아온 후, 지금껏 괴롭혔던 아내 리제(Lise: 밀리 비타느 분)의 죽음으로 환멸에 빠진다.

결혼 생활에 실패한 삐에르는 전쟁의 참상을 보고 나폴레옹을 숭배했던 자신을 저주한다. 포로로 감옥에서 실신한 프라톤(Platon Karatsev: 존 밀스 분)을 만나 생의 진실을 깨달은 삐에르는 마침내 쿠투조프(General Kutuzov: 아스카르 호몰카 분)의 초토 퇴각 작전이 성공, 불란서군이 깨끗이 소탕되는 것으로 종말되는 전쟁의 와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는다. 부흥의 싹이 트기 시작한 초토화된 거리에서 성숙한 나타샤는 삐에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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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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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작가 L.N.톨스토이의 장편소설·전4권 및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1863∼69년에 집필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전쟁의 시작으로 전개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열국의 정계·관계·재계의 대표자, 군사와 외교를 맡은 사람들, 명장군 M.I.쿠투조프와 러시아의 크롬웰이라 일컬어지는 개혁가 M.M.스페란스키 등 각양각색의 역사상 인물을 비롯하여 P.카라타예프로 대표되는 가상의 노예농민에 이르기까지 그 등장인물만도 559명에 이른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은 안드레이 공작도 피에르도 아닌 민중이다. 확실히 이 작품에서는 위선과 허위에 사로잡힌 귀족사회와는 대조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민중이 인간미 있는 소박하고 든든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야말로 톨스토이 사상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전에 쓰여진 러시아문학의 모든 작품에 비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다. 당시까지의 러시아 문학의 장편소설은 모두 1명 내지 2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그 운명을 더듬어 나가는 것에 의해 주제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전쟁과 평화》는 여러 명의 중심인물을 설정하고 그 주변에 다시 몇 사람의 주요인물을 배치하여 몇 가지 주제를 동시에 발전시켜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폴리포닉로망(다향적 소설)이며, 이것은 러시아 근대소설사에 획기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하나의 작품 속에서 그 상황에 따라 문체를 달리하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묘사면에서도 인물이 한 사람 등장할 때마다 그 인물의 용모나 성격을 설명하는 방법을 피하고 작중 인물의 성격을 그 인물의 반응이나 회화내용 및 행동에 의해 제시하는 방법을 취했다.

줄거리:

포기했던 인생을 나폴레옹적 영광의 획득으로써 전환시키기 위해 아우스터리츠전투에 참가한 안드레이는 부상을 입고 인사불성에 빠진다. 곧 나폴레옹의 목소리를 듣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눈에 비치는 끝없는 가을 하늘에서 영웅적 행위의 덧없음을 깨닫고 귀향하지만, 아내를 산후병으로 잃게 된다.

한편 나폴레옹의 찬미자인 전도양양한 피에르는 부정한 아내 엘렌과의 결혼생활에 좌절하여, 결투사건 뒤 프리메이슨 교리에 끌리기도 하고, 영지농민 해방사업에도 참여해 보았으나 인생에 대한 회의는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인생에 대한 불신에 빠지는 두 주인공에게 다시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이 로스토프가의 나타샤이다. 13살 소녀인 그녀는 태양과 같은 광원으로서 이야기에 등장하여 다양하고 비약적인 힘을 구사해 삶의 순간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른 봄 여행 도중 로스토프가에서 하룻밤을 묵던 안드레이는 그날 밤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는 나타샤의 노랫소리에 매혹되었고, 이튿날 아침 뜰에서 멀리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엿보고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삶의 약동을 깨닫는다.

생활의 의미를 완전히 잃었던 안드레이는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가는 길에 보았던 죽은 듯한 고목이었던 졸참나무가 돌아오는 길에는 무성해진 잎을 너울거리고 있는 장면이 안드레이의 심상의 변화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안드레이와 약혼한 뒤 아나톨리의 유혹에 빠지고, 쇠약해져 죽음에 이르른 순간에도 나타샤는 오히려 피에르에게 삶에 대한 불타는 신념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그녀의 존재에 의해 지탱해 온 《전쟁과 평화》의 수많은 톱니바퀴가, 보로지노결전으로부터 모스크바의 불타오르는 화염 위를 거쳐, 드디어 러시아 민중이 농노제의 역사적 한계를 벗어나 해방전쟁으로 궐기하는 국민적 잠재력으로 이어져 회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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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37] 동장군(冬將軍)

  •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혹독한 겨울 추위를 흔히 '동장군(冬將軍·General Winter)'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전쟁에서 유래했다.

나폴레옹 제국 체제의 절정기에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의 대부분이 프랑스의 직·간접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폴레옹의 대군은 정복한 국가의 군대를 끌어들여 규모를 키워 갔다. 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은 상태였지만, 프랑스 제국의 영향력이 동유럽까지 바짝 들어와 있는 데다가, 유럽 대륙 전체를 경제적으로 통제하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체제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1812년 러시아가 이 대륙봉쇄체제에서 이탈하여 영국과 교역을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그때까지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인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공격해 들어갔다.

프랑스 장군들이 지휘하는 다국적군의 공세에 밀려 러시아군은 계속 후퇴했다. 9월 7일 보로디노에서 나폴레옹군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패퇴하는 러시아군은 자국의 마을을 모조리 불태워서 적군이 물과 식량을 얻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폴레옹군이 9월 14일에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 이곳 역시 도시 전체가 불타서 점령군이 묵을 집이 남아 있지 않았다. 더는 지탱하기 힘들게 된 나폴레옹군은 10월 중순부터 서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보급 부족과 전염병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러시아군이 반격을 가해 왔고, 본격적인 러시아의 겨울 추위가 군사들을 괴롭혔다. 러시아 군대만큼이나 '동장군'이 나폴레옹 군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서, 무려 40만명이 희생당했다.

러시아의 동장군이 실력을 발휘한 것은 나폴레옹 때만이 아니다. 그 이전에 있었던 대북방전쟁(1700~1721)에서 강력한 스웨덴군이 러시아로 침략해 들어왔을 때에도 유별나게 추운 겨울 추위로 1만6000명이 사망하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지, 히틀러 역시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1941년에 소련을 침공하면서 히틀러는 전격전(電擊戰)을 통해 겨울이 오기 전에 소련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투가 장기화되어 혹독한 겨울 추위에 시달리면서 70만명 이상의 전사자가 생겼다. 러시아의 동장군은 몇 차례나 조국을 지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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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험한 관계 (라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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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영화 <스캔들>의 원작소설로 프랑스 혁명 이전, 문란하고 퇴폐적인 프랑스 상류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문제작. 십여 명의 파리 사교계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간 175통의 편지를 엮어서 만든 서간소설이다. 한때 ‘악덕한 책’으로 치부되어 문학사에서 잊혀졌지만, 스탕달, 보들레르 등 세계 최고 문인들의 찬사를 받아 다시 빛을 발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편지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에 다양한 문체,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대조되는 생각과 감정이 풍부하게 나타나 읽는 재미가 쏠솔하다. 특히 각 인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일으키는 미묘한 심리 변화는 이 책을 읽는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도 눈에 띈다. 그 중 정숙한 여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수많은 남자들을 유혹하고 짓밟으며 살아가는 여인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소설과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최고의 요부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 소개

피에르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

- 1741년 북 프랑스의 아미앵의 지위가 낮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라 페르 포병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빈약한 가문 때문에 툴, 스트라스부르그, 그르노블, 브장송, 발랑송 등의 도시로 자주 전출을 다니며 어렵게 군 생활을 했다. 1779년 포병 대위로 엑스 섬에 파견되어 성 쌓는 일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관계」의 집필을 시작했다. 1782년 4월에 출간된 이 작품은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2천 부나 팔려나갈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상세한 묘사 등으로 인해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선량한 남편이었던 라클로의 인간상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작품「위험한 관계」는 그의 유일한 문화적 유산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라클로는 오를레앙 공의 비서로서 일했고, 1792년에는 당통 밑에서 행정부의 감사를 맡았다. 공포정치 시대에는 오를레앙 공과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고, 1800년 보나프르트 집정관에 의해 라인 여단 사령관으로 임관되었다. 나폴리 주둔 보병 사령관으로 복무하던 중 1803년 9월 5일 이질로 세상을 떠났다.



책 표지 글


여자를 노리갯감으로만 여기는 프랑스 사교계의 소문난 바람둥이 발몽. 하지만 그의 콧대 높은 자존심에 꼭 한 번 상처를 입힌 여인이 있었다. 뾰족한 독가시를 가슴에 품은 채 아름다운 광채와 화려한 향기를 내뿜는 여인, 메르테유. 그녀의 편지 한 장에 프랑스 사교계가 흔들린다.


영화: 위험한 관계

(글렌 클로즈, 존 말코비치, 미셀 파이퍼)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야의 파리 귀족 사회. 사람들은 사치가 극에 달한 감미로운 생활에 취해 쾌락을 추구한다. 사교계의 여왕인 메르퇴이유 부인(Marquise de Merteuil)은 바람둥이로 유명한 비콩트 드 발몽(Viscomte de Valmont)과 계약을 맺고,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애인 바스티드가 불랑쥬 부인(Madame de Volanges)의 딸 세실(Cecile de Volanges)을 신부감으로 점찍고 있으니, 세실의 순결을 빼앗아 바스티드를 웃음 거리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비콩트는 그보다는 자기 고모의 성채에 묶고 있는 덕망과 신앙심 깊은 투르벨 부인(Madame de Tourvel)에게 더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비콩트는 능숙한 언변과 기질을 발휘해서 끈질기게 투르벨 부인을 유혹하고, 투르벨 부인은 마음의 갈등으로 번민에 싸인다. 그러나 끝내 비콩트를 물리치지 못하고 넘어가고 만다. 그녀의 선의는 비콩트의 악의를 악의로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세실을 소심한 청년 당스니(Chevalier D'arceny)와 사랑에 빠진 것을 이용하여 결국 임신까지 시킨 악독한 비콩트가 투르벨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철저히 악할 수만은 없어 투르벨 부인의 선의와 덕성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메르퇴이유는 점점 더 잔인한 조건을 내걸고 비콩트를 애타게 한다.

처음에 메르퇴이유는 이 대결을 투르벨 부인과의 경쟁으로 생각하고 비콩트를 통해서 그녀에게 승리하는 쾌감을 즐기려고 했었지만, 비콩트가 투르벨 부인에게 마음이 향할 수록 양상이 달라져 그것은 비콩트와의 대결이 돼간다. 메르퇴이유가 내건 마지막 조건은 투르벨 부인과 결별하는 것. 비콩트는허영심으로 눈이 멀어 진정으로 사랑하는 투르벨 부인에게 냉혹한 결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메르퇴이유 부인은 세실의 순결을 빼앗고, 투르벨 부인을 유혹하는데 성공하면 자신과 하룻밤을 잘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투르벨 부인을 사랑하는 비콩트의 마음을 도저히 되돌려올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녀의 자존심이 이제 그런 비콩트에게 자신을 값싸게 내던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서로 정복하고자 하는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싹트고 그녀의 마지막 거절에 둘 사이에는 전쟁이 선포된다. 비콩트는 메르퇴이유에게 빠져있는 당스니를 다시 세실에게 돌아가게 하고, 메르퇴이유는 당스니에게 비콩트와 세실과의 관계를 폭로하여 당스니와 비콩트의 결투로 이어진다. 비콩트는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같은 시각에 배신의 상처로 죽어가고 있던 투르벨 부인에게 자기의 진정한 사랑을 전해달라고 당스니에게 부탁한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백을 죽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비콩트가 죽기 마지막에 당스니에게 남긴 그간의 메르퇴이유 부인의 이중 성격을 폭로할 수 있는 편지들에 의해 그녀는 사교계에서 발도 못 들여놓을 비웃음 거리가 되고 만다.
그녀는 천연두에 걸려 눈이 먼채로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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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발몽

제르꾸르(Gercourt: 제프리 존스 분)의 정부인 메르떼이유(Merteuil: 아네트 베닝 분) 후작 부인은 제르꾸르가 마담드 볼랑즈(Madame De Volanges: 시안 필립스 분)의 외동딸 세실(Cecile: 파이루자 발크 분)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젊은 탕아 발몽(Valmont: 콜린 퍼스 분)을 시켜 결혼식 전에 세실의 순결을 빼앗으려는 계략을 꾸민다.

14세의 어린 소녀 세실은 아무 것도 모른 체 메르떼이유 후작 부인의 도움을 빌어 같은 또래의 음악 가정교사인 당스니(Danceny: 헨리 토마스 분) 기사와 연애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춘기적 풋사랑에 빠진다. 한편 발몽은 친척집에서 만난 젊은 유부녀 뚜르벨(Tourvel: 멕 틸리 분) 부인에게 반하여 그녀를 유혹하기에 바쁜데.

결국 발몽은 질투에 가득찬 메르떼이유 후작 부인의 계략에 휘말려 세실의 순결을 차지하게 되지만, 당스니 기사와의 싸움에서 그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마는 위험한 관계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임신을 한 세실은 권력을 쥔 제르꾸르와 예정된 결혼식을 올리고 당스니 기사는 새로운 발몽이 된다.

프랑스의 고전 소설을 쟝 피에르 카리에르가 각색한 사극으로,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남녀관계를 교묘히 조종하여 악마적 쾌감을 누리는 여인과 귀족 청년, 그들의 음모에 말려드는 한 정숙한 여인의 갈등과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같은 스토리를 크리스토퍼 햄튼이 각색한 <위험한 관계>는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셀 파이퍼 주연에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으로 대호평을 받은 바 있고, 탐미주의적 영상파로 유명한 프랑스의 로제 바딤 감독이 실비아 크리스텔, 나탈리 드롱, 존 핀치 주연으로 만든 작품은 <보디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개봉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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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맨하탄 최고의 상류층인 캐더린(Kathryn Merteuil: 사라 미셸 갤러)과 세바스찬(Sebastian Valmont: 라이언 필립)은 의붓 남매. 캐더린의 남자 친구 코트 레이놀즈(Court Reynolds: 찰리 오코넬 분)가 순진한 세실에게 가버리자 질투에 휩싸인 캐더린은 복수하기 위해 세바스찬에게 세실을 유혹해 잠자리를 같이 해 달라고 부탁한다. 재력과 외모, 젠틀한 매너를 모두 갖춘 세바스찬은 지금가지 수많은 여자들을 거친 전력을 가지고 있고, 세실이 그에겐 너무 쉬운 정복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캐더린의 부탁을 들어준다.

원래 캐더린의 목표는 코트와 세실을 헤어지도록 하는 것. 그러나 세실은 엉뚱하게도 자신의 첼로 교습을 맡은 로널드 클리포드(Ronald Clifford: 숀 패트릭 토마스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타켓이 된 여자는 바로 잡지에 '혼전 순결'을 서약하는 글을 기고한, 새 학장의 딸 아네트(Annette Hargrove: 리즈 위더스푼 분), 세바스찬은 가을 학기가 시작하기 전가지 정숙한 아네트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캐서린에게 내기를 건다. 만일 세바스찬이 실패하면 그의 애마인 1956년 형 재규어를 캐더린에게 주고, 성공하면 그들의 부모들이 결혼하기 이전에 세바스찬이 항상 요구했던 것, 즉 캐더린이 세바스찬에게 하룻밤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

세바스찬은 아네트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공략을 펼치지만,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는 아네트 때문에 점점 애가 탄다. 그러다 아네트는 조금씩 세바스찬에게 마음을 열어 가고, 세바스찬은 그녀로 인해 그 동안 잊고 지내던 웃음을 되찾는다. 드디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세바스찬. 그러나 그는 침대로 이끄는 아네트를 뒤로 한 채 방을 나와 버린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걸까? 진정으로 아네트를 사랑하게 된 세바스찬. 그에게 있어 아네트는 더 이상 게임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세바스찬이 아네트 때문에 이제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어졌음을 알게 된 캐더린은 불같은 질투에 휩싸이고, 그녀의 질투심은 또 다른 사건을 몰고 오는데.

결혼전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아네트를 놓고 이복 형제인 캐트린과 세바스챤이 내기를 하는데, 바람둥이인 세바스챤이 아네트와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성공하면 캐트린은 세바스챤의 여자가 되고, 실패하면 그의 차인 자규어를 갖게 된다. 헐리웃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배우들인 사라 미셸 겔러와 라이언 필립, 리즈 위더스푼, 셀마 블레어 등 청춘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로 18세기 프랑스에서 씌어진 원작을 바탕으로 남녀간의 사랑과 복수, 성에 관한 작품이다. 이미 <위험한 관계>, <발몽> 등 내놓라는 감독에 의해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으며, 4번째가 되는 이번 작품은 완전히 헐리웃 청춘물 스타일로 리메이크하였다. <덤 앤 더머>, <킹핀> 등의 각본을 썼던 로저 컴블이 감독에 데뷔하는 영화이며, 이 영화로 만난 라이언 필립과 리즈 위더스푼이 약혼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선 'Sexe Intentions'(성적의도)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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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재용 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656

...통하였느냐?
조선 최고의 연애 선수들이 온다!

[들어 가는 말]

됴씨추문록(趙氏醜聞錄). 이 화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다수 품행이 심히 풍탕하고 난잡하여, 과연 실제로 존재했을까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졌듯 유교로서 나라의 근간을 세우고, 남자들은 군자의 예를, 여자들은 현숙한 부인의 예를 따르도록 하는 이 조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여기 소개되는 내용이 설사 실제 사건의 근거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인물들은 실명이 아닐 수도 있는 바, 특정인이나 가문에서 문제삼지 않길 권고하며, 꼭 자제력이 약하거나 읽기 두려움이 앞선다면 당장 책을 덮고 뇌리에서 지워버리기를 충고한다. 선왕 갑인년에 씌어진 글을 계해년에 엮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어깨너머로 사서삼경을 깨쳤지만,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한 한과 불만을 지니고 있는 조씨부인. 겉으론 사대부 현모양처의 삶을 살면서, 남몰래 남자들을 정복해가는 사랑게임을 즐긴다.

한편, 그녀의 사촌동생 조원은 시,서,화에 능하고 무술에 도통하나, 귄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주류의 가치관을 비웃듯 고위관직을 마다하고 뭇여인들에 탐닉하는 것을 즐긴다. 어릴 적 첫사랑의 대상이기도 한 사촌누이, 조씨부인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긴 채 사랑게임의 은밀한 동업관계를 유지한다.

어느날 조씨부인은 남편의 소실로 들어올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어린 소옥을 범해줄 것을 조원에게 제시하지만 조원의 마음은 이미 딴 곳에 가있다. 9년간 수절하며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 숙부인이 바로 그 상대.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선택적 삶(천주교도)을 살아가는 학처럼 고고한 성품의 소유자 숙부인을 유혹하려는 조원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시대 최고의 바람둥이에게도 천하의 정절녀를 정복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은데.

<위험한 관계>,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 이미 미국과 프랑스에서 수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던 18세기 말 프랑스의 쇼데를르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의 서간체 소설을 조선시대로 옮겨 영화화한 작품.

18세기 조선 최고의 요부 조씨 부인(이미숙)이 바람둥이 정부 조원(배용준)을 내세워 9년간 수절해 온 열녀 숙부인(전도연)을 유혹한다는 내용으로, 사대부 집안의 풍속과 문화를 배경으로 에로틱한 장면이 펼쳐진다. 시대극인 만큼 순수 제작비 규모만 50억원에 이른다. 고증적 사실 여부를 떠나, 조선시대 양반 부유층들의 호사스런 삶을 묘사하고 있는 화면이 대단히 매혹적이다. 원작의 가장 훌륭한 리메이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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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ETHE 소설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청년 괴테의 대표작.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어 자살하는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1774년 출간되자마자 젊은 독자층을 사로잡아, 베르테르의 의상인 노란 조끼와 파란색 상의가 유행했고 자살하는 남자들도 많았다.

괴테는 25세 때 이미 약혼자가 있던 샤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후 괴테는 친구 예루살렘이 남편이 있는 부인을 사랑하다가 괴로운 나머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경험과 친구의 이야기를 합하여 구성한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사랑의 열병을 휘몰아치듯 그려나간 이 소설은 아직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이 통과의례처럼 읽는 작품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의 서간체 소설. 1774년 간행. 친구인 케슈트너의 약혼녀 샤르로테 부프에 대한 괴테 자신의 실연(失戀) 체험과, 괴테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예루잘렘이 유부녀에게 실연당해 자살한 사건(1772.10.30)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당시에 새로운 장르였던 소설에서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청년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이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유행하였다. 나폴레옹도 이 작품의 애독자로서 진중에서도 휴대하면서 되풀이해 읽었다고 한다.

베르테르는 젊은 변호사로서 상속사건을 처리하러 어느 마을에 왔다가 로테를 알게 되고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다. 그러나 로테에게는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공사(公使)의 비서가 되어 먼 나라로 떠난다. 베르테르는 속무(俗務) 생활과 공사의 관료 기질 등 인습에 반항하다가 파면되고, 사교계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어 다시 귀국한다.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있는 로테의 따뜻한 보살핌은 그의 고독감을 더욱 깊게 하여 마침내 그는 권총자살을 한다.

이 작품은 일약 괴테의 문명을 떨치게 했고, 다른 나라의 문학에 끼친 영향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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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HELM TELL

프리드리히 쉴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의 희곡.
저자 프리드리히 폰 실러
장르 희곡
발표 1804년

1804년 바이마르에서 초연된 5막의 희곡이다. 실러는 이 작품을 위해 역사적 연대기를 참고했음을 밝히고 있지만 역사적 자료들은 부수적 의미에 불과하다. 외세 압제자에 대한 봉기를 주창하는 정치적 이념극이며 언어와 행동의 문체적 일치로 높이 평가되었고, 스위스에서는 오랫동안 민족극으로 여겨졌다.

이 극은 평화로운 마을에 닥친 정치적 폭력에서 시작된다. 스위스인 바움가르텐은 자신의 아내를 범하려 했던 합스부르크가의 성주를 죽이고 도망치는데 이때 빌헬름 텔이나타나 그를 호수 건너편으로 건네준다. 추적자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쫓아낸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는 스위스인들의 저항을 부추기게 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터전을 제공하라는 과제가 텔에게 부여된다.

텔은 폭력지배는 스스로 고요해지는 자연과 같다면서 인내하고 침묵할 것을 호소한다. 그러나 텔이 성주 헤르만 게슬러의 모자에 부과된 경례를 하지 않자 체포되어 그의 아들의 생명을 건 사과화살쏘기로 내몰린다. 그는 성공적으로 장애를 넘지만 두 번째 화살이 성주를 겨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된다. 탈출에 성공한 텔은 성주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살해동기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의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실러는 이 작품에서 개인과 사회가 각각의 절대적인 요구로부터 물러나 서로 상대화하고 보충하여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조화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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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berne
,

 

 

그림과 영화로 보는 서양 근대-현대사

(1) 서양 근대사회의 시작

(2) 시민혁명과 시민사회의 형성

(3)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전

(4) 20세기 현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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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영화 4 (절대왕정 - 바로크 예술)

왕의 춤 - 왕의 남자 -파리넬리 - 서편제 - 엘리자베스 1세

<절대왕정시대 부터시민혁명 이전까지>

네티즌이 추천한한핏줄 영화는?

* 파리넬리 왕의 춤 kokomanara84님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작품으로 시대적 배경을 화려하게 그려낸 작품. 예술을 소재로 함.
* 파리넬리 왕의 남자 susiehit님
공연을 통한 배우들의 성공과 이야기 전개, 여장남자들의 등장, 장생과 연산을 두고 하는 공길의 갈등, 그리고 파리넬리가 리카르도와 헨델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비슷한 느낌을 준다.
* 파리넬리 서편제 j511sj님

파리넬리에서 리카르도가 동생을 거세를 시키는 부분과 서편제에서 유봉이 딸을 눈멀게 만드는 부분이, 소리의 완성을 위해 신체의 일부분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 왕의 춤 - 왕의 남자 wonsay
왕의 권력과 무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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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영화 VIVALDI: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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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춤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2730

http://user.chol.com/~silberne/new/kimal/cpic016x2.JPG

17세기 프랑스. 14살의 어린 왕 루이 14세(브누아 마지멜 분)는 이태리 출신 음악가 륄리(보리스 테랄 분)가 만든 무곡에 맞춰 춤을 춘다. 어린 루이 대신에 실질적인 권력을 움켜쥔 사람은 어머니와 재상 마자랭. 루이에게 주어진 건 춤과 음악 뿐이다. 그리고 8년 후, 루이는 재상의 죽음을 계기로 직접 통치에 나선다. 루이는 자신을 위해 작곡하고 자신의 춤을 돋보이게 해주는 륄리의 음악에 매료된다. 륄리 또한 혼신을 다해 작곡한 음악과 열렬한 사랑을 왕에게 바친다. 그들은 마치 춤과 음악에 심취하듯 서로에게 빠져들어간 것이다. 루이는 왕실극단의 연출자 몰리에르(체키 카리요 분)와 왕실 악단 지휘자 륄리가 만든 음악과 연극을 통해 절대권력의 태양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들의 작품은 바로 왕의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그러한 왕의 은밀한 야심을 대변하던 몰리에르와 륄리는 지나치게 신랄한 풍자극으로 귀족과 성직자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 하지만 루이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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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왕권신수설-궁정예술/시민예술-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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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9894

조선시대 연산조.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감우성 분)은 힘있는 양반들에게 농락당하던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인 공길(이준기 분)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공길과 함께 연산(정진영 분)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 분)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된다. 공연은 대 성공을 이루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간다.

의금부에서 문초에 시달리던 장생은 특유의 당당함을 발휘해 왕을 웃겨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왕 앞에서 공연을 시작하자 모든 광대들이 얼어붙는다. 장생 역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왕을 웃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왕은 꿈쩍도 하지 않고... 바로 그 때 얌전하기만 한 공길이 기지를 발휘해 특유의 앙칼진 연기를 선보이자 왕은 못 참겠다는 듯이 크게 웃어버린다. 이들의 공연에 흡족한 왕은 궁 내에 광대들의 거처, 희락원(喜樂園)을 마련해 준다.

궁에 들어온 광대들은 신바람이 나서 탐관오리의 비리를 풍자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왕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중신들의 분위기가 싸늘함을 감지한 왕이 중신 중 한 명을 웃지 않는다며 탐관오리라는 명목으로 형벌을 내리고 연회장엔 긴장감이 감돈다.

연이은 연회에서 광대들은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왕이 후궁에게 사약을 내리는 경극을 연기하고, 연산은 같은 이유로 왕에게 사약을 받았던 생모 폐비 윤씨를 상기하며 진노하여 그 자리에서 선왕의 여자들을 칼로 베어 죽게 한다. 공연을 할 때마다 궁이 피바다로 변하자, 흥을 잃은 장생은 궁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공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겠다고 한다. 그 사이 왕에 반발한 중신들은 광대를 쫓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왕의 관심을 광대에게 빼앗겼다는 질투심에 휩싸인 녹수 역시 은밀한 계략을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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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넬리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521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거세된 가수 = 카스트라토 이야기)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가수), 파리넬리(Farinelli/Carlo Broschi: 스테파노 디오니시 분)가 트럼펫 연주자와 대결을 벌인다. '파리넬리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각자 지닌 기교와 음역을 넘어 절정에 달하자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마는 트럼펫 연주자. 그중에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잘생긴 이 젊은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예쁜 여자들도 있다. 열 살 때, 거세를 한 파리넬리와 그의 노래를 작곡하는 형 리카르도(Riccardo Broschi: 엔리코 로 베르소 분)가 여자를 공유하는 '형제의 비밀'인 것이다.

이 날 나폴리에서 파리넬리는 영국왕실의 공인 작곡가인 헨델(Handel: 제로엔 크라브 분)과 첫 번째 만남을 갖는다. 헨델은 파리넬리에게 영국으로 함께 갈 것을 제안하지만 리카르도는 파리넬리를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이를 좌절시킨다. 유럽 순회공연에서 여러 해 동안 형제는 유럽의 각 나라를 돌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신의 모습으로 치장한 파리넬리가 영혼을 뒤흔드는 목소리로 노래하면 여자들은 기절하고 남자들 마저 환호했다. 모든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지만 파리넬리는 어떤 여자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가 없다. 거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파리넬리. 형 리카르도는 그런 그를 마약으로 위로하며 거세는 중병에 시달리는 어린 파리넬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1734년 런던. 헨델이 이끄는 코벤튼가든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밀려있는 파리넬리의 스승 포로포라(Porpora: 오메로 안토누티 분)는 자신이 이끄는 노블레스 극장을 살리기 위해 파리넬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노블레스의 주요 후원자, 마가렛 헌터(Margareth Hunter: 캐롤린느 셀리어 분)의 조카인 알렉산드(Alexandra: 엘자 질베르스테인 분)는 그 어떤 여자보다도 열정적인 사랑을 파리넬리에게 바치지만 이를 그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침내 파리넬리의 공연으로 노블레스 극장은 연일 성황을 이루고 헨델은 수세에 몰린다. 하지만 헨델을 비웃는 왕족에게 헨델의 음악성을 변호하는 파리넬리. 그는 카스트라토라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모욕을 서슴지 않았던 헨델이지만 그의 음악성만은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형 리카르도의 얄팍하고 기교만을 중시하는 음악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다. 형제의 갈등은 심해지고 리카르도는 파리넬리를 떠나는데.

한편 알렉산드라는 헨델의 악보를 훔쳐 파리넬리에게 가져온다. 홀로 헨델의 음악을 열심히 연습하는 파리넬리.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헨델은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로는 그를 감동시킬 수 없다고 비웃는다. 그리고 비열하게도 공연을 앞둔 파리넬리에게 리카르도로부터 듣게 된 거세의 비밀을 폭로한다. 리카르도가 자신의 음악을 노래할 '악기'로 파리넬리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거세했다는 사실을. 그러나 절망과 슬픔을 이기고 진정한 음악을 갈구하는 파리넬리의 목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운다. 헨델의 아리아 카라 스포자!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관객들 뿐 아니라 헨델마저 감동시킨다. 그리고 파리넬리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공연이 막을 내린다.

1740년 마드리드. 스페인 궁정에서 이제 오로지 국왕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만 노래하는 파리넬리, 그의 곁에는 알렉산드라가 서 있다. 형 리카르도가 온 인생을 걸고 작곡한 오페라를 파리넬리에게 바치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다. 이 만남으로 파리넬리의 오랜 상처는 다시 살아나 그를 괴롭힌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형 리카르도. 파리넬리는 그런 형을 아내 알렉산드라에게 이끈다. 두 형제는 마지막으로 한 여자를 함께 사랑한다. 그리고 리카르도는 전쟁터로 떠난다. 이제 신의 목소리 파리넬리는 자신의 아들을 갖게 되고 그의 괴로운 인생은 마침내 안식을 얻는다.

실제파리넬리는 말년에 우울증에 걸린 어떤 왕의 치료를 위해매일 똑 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 제2막 4장에서 알미레나가 노래하는 아리아로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유명해진 곡. 유명한 가수들이 모두 한 두번씩 레코딩한 노래. 조수미.사라 브라이트만 등등의 노래도 있다.

그리스의여가수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가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에 삽입된 OST ‘울게하소서’(Lascia chio pianga)를 국내 스튜디오에서 녹음 하기도 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news_uid=15245

영화 파리넬리 중 주인공이 과거 거세 장면을 떠올리면서 노래 부르는 동영상 보기 (헨델이 기절하는 장면 포함)

http://blog.naver.com/singer143?Redirect=Log&logNo=20029728688&vid=1001030619


http://blog.naver.com/jsksoft?Redirect=Log&logNo=9001478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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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소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3&eid=uQC+cRcRh25878WU19Vcj7JM2pier7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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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y06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 동호(김규철 분)는 소릿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리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가집 잔치집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은 그 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신새길 분)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오정혜 분)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아기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수리품을 파는 틈틈히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그러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줄고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가던 중 동호는 어미 금산댁이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자 유봉은 송화가 그 뒤를 따라갈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송화의 눈을 멀게 한 일을 사죄하고 숨을 거둔다. 그로부터 몇년 후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 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없는 주막에서 송화와 만난다. 북채를 잡는 동호는 송화에게 소리를 청하고, 송화는 아비와 그 똑같은 북장단 솜씨로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헤어짐의 길을 떠난다.

역사적으로 판소리는 한국의 남서부 지역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랑받아왔다. 이 지역 사람들이 경험했던 집단적인 슬픔이 음악의 형태로 승화된 것이 판소리. 이 영화속에서는 그 몰락해가는 대중 예술의 역사가 떠돌이 예술가들인 주인공들의 삶속에 표현된다. 소리꾼 부녀와 의붓남매의 기막힌 삶, 소리를 통해 자식을 낳고, 그 여식의 아비와 소리를 떠날까봐 눈에 청강수를 부어 장님으로 만들면서까지 소리를 붙잡아두려는 아버지의 이야기. 영화는 판소리가 현대 한국의 문화사 속에서 그것이 차지해온 위상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임권택 감독이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을 읽고 영화화하려했던 것은 이미 13여 년 전이었는데, 그땐 한국적인 여인 모습에 판소리를 할 줄 아는 배우가 없어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스 춘향 선발대회를 보다가 그 적역을 발견하면서 영화화가 실현되었다. 바로 92년 미스 춘향 오정해로, 그녀는 남원 명창 대회에서 1등을 한 전적도 있다. 김명곤은 마당극을 해온 연극인 출신 연기자로서, 이 작품의 원작을 직접 각색하는 솜씨도 보였다.

'서편제'는 전라도 지역을 나눠서 부르는 이름으로 '동편제'라 하면 주로 임실, 구례, 남원, 운봉쪽을 말하고 서편제는 보성, 곡성, 해남쪽을 말한다. 또한 지역적 의미 외에 음악적 구분이 더 많은데, 동편제는 우조라고 해서 소리까 씩씩하고 사내답고 우렁찬 반면, 서편제는 계면조로 슬픈 감정에 기교가 있는 여성적인 느낌의 소리다. 원작자가 굳이 제목을 서편제로 한 이유도 서편제가 한국 사람의 한을 표출시키는 데 더 가깝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임감독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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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라는 것도 있나요?>

http://100.naver.com/100.nhn?docid=89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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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속편 <천년학>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5682

http://www.beyondtheyears.com/

http://www.newsen.com/news_view.php?news_uid=38490&search=title&searchstring=임권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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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초의 여왕. 영국을 선진국으로 도약 시킨 절대 군주.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Elizabeth, 1998)


121 분

개봉 1999.03.20

다른 제목 : Elizabeth: The Virgin Queen

감독 : 세자르 카푸르

출연 : 케이트 블랑쉐, 제프리 러쉬, 조셉 파인즈, 리차드 어텐보로

3살엔 사생아, 21살엔 사형수, 그러나 25살엔 세계를 지배한 여인!

반역과 암살의 음모를 잠재운 위대한 카리스마!

 

1554년 영국, 질투심 많은 카톨릭 신봉자인 메리 1세의 치정 하에 있는 영국은 재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어려운 처지에 몰려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구교도 메리 여왕(Queen Mary Tudor: 캐시 버크 분)은 신교도 박해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역시 신교도인 메리의 배다른 여동생 엘리자베스 공주(Elizabeth I: 케이트 블랑쉬 분)도 모함에 빠져 사형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나고 메리는 임종을 맞는다. 여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는 공주 시절 사랑하던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 조셉 피네스 분)와 헤어질 것을 강요당하고, 윌리엄 세실 경(Sir William Cecil: 리차드 아텐보로 분)에 의해 정략 결혼을 해야할 처지에 놓인다. 영국은 당시 재정적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한 채 군대도 없어 외세의 침략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노포크 공(Duke of Norfolk: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톤 분)이 왕정의 반대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국가를 위해서 엘리자베스는 죽은 언니의 남편이었던 스페인의 필립 왕이나 프랑스 여왕의 조카 앙주 공(Duc d'Anjou: 빈센트 카셀 분) 중 한 사람을 선택해 결혼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다. 이때 프랑스의 여왕 메리 드 기스(Mary of Guise: 패니 아던트 분)가 스코틀랜드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이 전투에서 엘리자베스는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권위를 더욱 드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세실 경의 압력에도 불구, 청혼을 모두 거부하고, 이로 인해 암살의 위협에 시달린다. 더들리에게서 위안을 찾으려던 그녀는 그가 이미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모두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 엘리자베스는 이전보다 더욱 월싱엄 경(Sir Francis Walsingham: 제프리 러쉬)에게 의지하게 된다. 조카의 청혼을 거절한데 대해 앙심을 품은 메리 여왕이 독 묻은 드레스를 보내 암살을 기도했음이 드러나자 엘리자베스는 월싱엄 경을 스코틀랜드로 보내 메리 여왕을 암살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노포크 공을 중심으로 반역을 꾀하던 궁중 내 무리들을 숙청함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왕좌를 안전하게 지켜낸다. 음모와 배반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그녀는 자신이 영국과 혼약을 맺은 '버진 퀸'임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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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절대 왕정의 전성기를 갖게 했던 여왕 엘리자베스의 전기 영화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공주에서 여왕으로 등극한 엘리자베스를 소재로 한 시대극이자 스릴러다. 음모와 암투가 난무하던 시절, 왕위에 올라 독립된 한 개체로서의 여성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엘리자베스 튜더의 파란만장한 삶과, 개인적 열정, 우정을 비롯해 국가를 통합해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94년작 <밴디트 퀸>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인도 감독 셰카르 카푸르가 첫 영어권 영화로서 연출한 작품이다.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분장상 단 한부문만 수상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관한 참고 자료.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는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딸로 1553년 9월 7일 그리니치 로열 팰리스에서 출생했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헨리 8세는 폭군임과 동시에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 스페인의 공주였던 첫번째 부인 아라곤의 캐더린은 '메리'라는 딸 하나밖에 낳지 못했기 때문에 헨리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아들을 바랐던 헨리 8세는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와 이혼했다. 교황이 이혼을 반대하자 천년 이상 이어온 구교(로마 카톨릭)와 즉시 인연을 끊고 영국을 신교 국가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던 로마 교황청과 정면 대립하게 되자 전 유럽이 긴장했다.

대를 이을 아들의 탄생이 안정의 권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때에 두번째 부인 앤 볼린이 또다시 딸인 엘리자베스를 낳자 크게 실망한 헨리 8세는 앤 볼린을 간통과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참수형에 처하고, 그녀와의 결혼이 무효이며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라고 발표한다. 엘리자베스는 런던에서 햇필드 하우스로 추방당해 외롭게 자란다. 역사에 의하면 엘리자베스는 어린 나이에도 어른처럼 의젓했다고 전한다. 헨리 8세는 세번째 왕비 제인 세이모어를 맞아들인다. 그녀는 그에게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을 낳음에 따라 엘리자베스의 존재는 더욱 약해진다. 비록 그녀가 사생아라고는 해도 왕위 계승 서열 3위였던 공주 엘리자베스는 귀족의 아들들만이 받을 수 있었던 교육을 받았다. 헨리 8세와 앤의 이야기는 그 유명한 69년작 <천 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에 잘 나타나있다. 음악, 시, 고전과 역사는 물론 이태리어, 불어, 그리스어, 라틴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했는데, 이런 외국어 능력은 훗날 그녀의 뛰어난 외교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영리하고 진지했던 엘리자베스는 이때 신학에도 관심을 가져 태동기에 접어든 실용적인 성공회의 교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헨리 8세의 여섯번째이자 마지막 왕비인 캐더린의 도움으로 엘리자베스는 다시 런던에 입성할 수 있게 된다. 1547년 헨리 8세가 죽자 10세의 에드워드가 뒤를 잇게 된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몸이 허약하여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으며, 수 많은 음모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의 후견인이었던 캐더린 파는 토머스 세이모어 경과 재혼했고, 세이모어 경과 엘리자베스의 관계를 놓고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캐더린 파가 죽은 뒤 세이모어 경은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왕위를 노리려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엘리자베스 역시 심문을 당했다. 1553년 에드워드 왕이 죽자 카톨릭을 맹신하는 메리가 왕위에 올랐다. 그녀가 스페인의 필립 왕과 결혼하고 영국을 카톨릭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을 할 수록 국민들의 마음은 점점 더 신교로 돌아섰고, 국민들은 엘리자베스를 향하게 되었다. 1554년 토머스 와이어트의 반란이 일어나자 엘리자베스 역시 반역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런던 탑에 끌려갔으나, 반역 가담에 대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결국 풀려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통치 기간 동안 여왕에 대한 깊은 충성심과 카톨릭 신자처럼 거짓으로 살아야 했는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것이 연극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메리 여왕은 아이가 없었고 이제 남편에게 마저 버림받은 처지였다. 암으로 투병하던 그녀는 카톨릭을 수호하기 위해 다음 후계자인 엘리자베스를 제거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말에 계속 망설이다 결국 1558년 11월 17일 서거하였다.

1559년 1월 25세의 나이로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된다.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식을 가진 그녀의 앞길에는 이제까지 겪어온 위험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녀의 첫 번째 임무는 영국에 신교를 회복시키고, 메리 시절의 유혈 정치를 끝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가장 막강한 두 국가, 프랑스와 스페인을 영국의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16세기에는 여성은 연약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녀가 혼자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정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 그녀가 조속히 결혼해 아들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찰스 공, 훗날 프랑스의 왕이 되는 앙주 공, 스웨덴의 에릭 14세, 러시아의 이반 대제 등이 물망에 올랐다. 엘리자베스는 수년 동안 이들을 저울질해 보았고, 그녀가 영영 결혼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의회의 두통거리가 되었다. 그녀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으면, 헨리 8세의 여동생의 손녀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뒤를 잇게 되며, 그녀가 구교도라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영국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다. 결국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는 그 누구도 아닌 어린 시절부터의 애인 로버트 더들리 백작임이 드러나고, 여왕이 임신했다는 소문까지 궁중에 나돈다. 그러나 그녀가 워낙 조심스럽고 신중해 오늘날까지도 그 로맨스가 진실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70년 교황은 엘리자베스를 파문시키고 그녀의 신하들이 어떤 충성의 서약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 후대의 교황은 한술 더 떠 이 '미천한 이단아'를 왕좌에서 밀어내는 것이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영국 구교 귀족층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엘리자베스 축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이 군사 적으로 약했던 것은 사실이나 엘리자베스의 고문들은 프랜시스 월싱엄 경 덕분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독실한 신교도인 월싱엄은 문제의 근원이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5세와 메리 드 기스의 딸 메리에게 있다고 보고 1568년 그녀를 영국에 가택연금 시켰다. 엘리자베스는 그 이상의 행동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1569년 월싱엄은 당시 가장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자랑하던 노포크 공이 스코틀랜드의 메리와 결혼해 왕좌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이듬해 노포크가 메리를 탈출시키려는 음모를 실행하려는 때(훗날 리돌피 플롯이라 불리운다) 이를 밝혀내어 그를 단두대로 보낸다. 이 음모에는 더들리 백작도 연루되어 있었다. 남편 없이 또 한번 역경을 이겨낸 엘리자베스는 선대에 없었던 막강한 여왕의 모델을 세우려 하고 있었다. 전쟁 대신 사랑의 언어로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들이 더 이상 성모 마리아에게서 위안을 찾을 수 없을 때 자신이 그 위안을 줄 수 있는 버진 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황금기로 불리며, 그녀는 '글로리아 나라(요정의 나라)'로 불린다. 이러한 황금기와 신격화된 왕의 이미지가 이만큼 굳건히 세워진 것은 이 시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그녀의 이미지 역시 정치적으로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스펜서는 시로써 그녀를 찬양했고, 화가인 힐리어드는 이 '태양 여왕'의 초상화를 그려냈다. 탤리스와 버드는 그녀의 통치를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엘리자베스가 의회에서 '황금 연설(Golden Speech)'을 했던 1601년은 통치 40년이 넘은 해였다. 이제는 늙고 노쇠했으며 옛날과 같은 영광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그녀는 '버진 퀸' '글로리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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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ELISABETH : The Golden Age

 

 

 

 

 

 

 

 

 

16세기 말, 신교도와 구교도의 대립으로 대륙간의 전쟁이 한창인 시대. 영국은 신교도인 여왕 엘리자베스 1세(케이트 블란쳇)가 통치하고 있다. 구교도가 주권을 잡은 스페인은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메리 스튜어트(사만다 모튼)를 이용해 영국을 점령하고자 엘리자베스의 암살음모를 계획한다.

국가 간의 동맹을 목적으로 여왕의 구혼자들이 줄을 잇는 사이, 엘리자베스는 자유로운 탐험가 월터 라일리(클라이브 오웬) 경에게 빠져들지만 나라를 통치하는 ‘여왕’의 위치 때문에 애써 마음을 숨긴다. 라일리 경에 대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가고 여자로서의 삶과 여왕으로서의 권위에서 갈등하던 엘리자베스는 메리 스튜어트의 암살 음모를 발각하게 된다. 반역자로 사형에 처해진 메리 스튜어트의 죽음을 빌미로 스페인은 영국과의 거대 전쟁을 선포하는데…

한 여자로서의 인생에 사랑이라는 축복 대신 전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그녀는 운명이 자신의 어깨 위에 얹어놓은 여왕의 자리를 인정하고 검을 손에 쥔다. 그리고 이제, 스페인 무적함대에 맞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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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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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SHAKESPEARE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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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LET 드라마 등장인물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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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적인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쓴 《햄릿 Hamlet》은 하나의 복수비극으로, 주인공인 왕자의 인간상은 사색과 행동, 진실과 허위, 양심과 결단, 신념과 회의 등의 틈바구니에서 삶을 초극해 보려는 한 인물의 모습이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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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햄릿 왕이 급서하자 왕비 거트루드는 곧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재혼하고, 클로디어스가 왕이 된다. 햄릿 왕자는 너무 서둔 어머니의 재혼을 한탄하는데, 마침내 선왕(先王)의 망령이 나타나, 동생에 의하여 독살(毒殺)되었다고 말한다.

햄릿은 복수를 위하여 거짓으로 미친 체한다. 지식인인 햄릿은 망령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왕의 본심을 떠보기 위하여 국왕 살해의 연극을 해 보이는데, 왕은 안색이 변하여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후 햄릿은 재상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잘못 알고 죽이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아는 미쳐서 죽는다. 왕은 햄릿을 잉글랜드로 보내어 죽게 하려고 하나 왕자는 도중에서 되돌아온다.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는 왕의 꾐에 빠져 햄릿을 독을 바른 칼로 죽이려고, 왕과 왕비 앞에서 펜싱 시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왕의 계획은 틀어져, 왕비는 왕이 햄릿을 독살하려고 준비한 독주(毒酒)를 모르고 마셔 죽고, 레어티스와 햄릿은 독을 바른 같은 칼에 죽는데, 햄릿은 최후의 순간에 그 칼로 왕을 죽인 후 숨을 거둔다. 그리고 왕위는 노르웨이 왕자에게로 돌아간다.

당시 유행한 복수비극의 형태를 취하면서 부왕의 원수를 갚아 국가질서의 회복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지식인 햄릿 왕자의 고뇌를 주제로 한 비극이다.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이다. 햄릿의 사색적 성격은 19세기의 낭만주의에 의하여 더욱 높이 평가되어 이 비극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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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AMLET(로렌스 올리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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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LET(케네스 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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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LET 2000(에단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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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LET(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멜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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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연 (중국판 HAM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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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LLO 드라마 등장인물 관계도(디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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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 《오셀로 Othello》는 흑인장군인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악역 이아고(Iago)의 간계(奸計)에 의해 무참히 허물어지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나 심리적 갈등보다는 인간적 신뢰가 돋보이는 작품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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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5막 비극. 1604년경의 작품이며, 1622년 간행되었다. 이탈리아의 소설에서 취재한 것으로 정식 제명은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이다.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자, 오셀로는 이 섬의 수비를 위하여 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떠난다. 오셀로의 기수(旗手) 이아고는 갈망하던 부관의 자리를 캐시오에게 빼앗긴 데에 앙심을 품고 두 사람에게 복수할 것을 계획한다.

사이프러스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주벽이 있는 캐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먹이어 소동을 일으키게 하고, 오셀로에게 부관의 자리를 파면당하자 이번에는 데스데모나를 통하여 복직운동을 하도록 권장한다. 그렇게 해놓고 오셀로에게는 캐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밀통(密通)하고 있다고 넌지시 비추고, 오셀로가 그녀에게 주었던 귀중한 손수건을 자기 처인 에밀리아에게 명하여 훔쳐내서 캐시오의 방에 떨어뜨려 놓아 가짜 증거를 만든다. 경솔하게도 그를 믿었던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눌러 죽인다. 그런데 모든 것이 폭로되자 오셀로는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는다.

《오셀로》는 《햄릿》 《리어왕》 《맥베스》와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로 손꼽히지만, 다른 비극에 비하여 사실적이며 가정비극의 색채가 짙다. 인간의 사랑과 질투를 선명하고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콜리지가 ‘무동기(無動機)의 악’이라고 부른 이아고의 악의 추구는 무시무시할 만큼 박력이 있다.

(영화)

 

OTHELLO (오손 웰즈) 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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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LLO (올리버 파커)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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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미국 사립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리메이크(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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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세익스피어의 걸작 <오델로>를 인종문제가 팽배한 현대 미국의 사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옮겨온 화제작. 일찍이 99년 초 제작이 완성하였으나 그해 4월 컬럼바인 고교에서 발생했던 비극적 총기난사사건을 연상시키는 엔딩으로 인하여 개봉까지 2년이나 기다려야 했던 비운의 작품이다. 영화 제작 후 디즈니 이미지의 추락과 각종 논란을 두려워해 북미 배급을 포기한 디즈니 산하 미라맥스 사로부터 캐나다 영화사인 라이온스 게이트 사가 배급권을 사들이고 나서야 마침내 개봉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400만불의 저예산 영화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좋은 성과를 얻었다

휴고는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고교 농구팀인 호크팀의 선수로 성격이 좋아서 모두와 잘 지낸다. 하지만 알고보면 갈등이 많은 청년! 아버지가 아들인 자신보다 오딘이라는 흑인 농구 선수를 더 감싸고돌고 자신에게는 추호의 관심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아버지의 관심을 끌려는 수단으로 오딘과 의도적으로 친하게 지낸다. 시간이 자날수록 아버지는 자신을 더더욱 못 미더워하고 사사건건 오딘을 추켜세우기 만하고... 휴고의 질투는 어리석은 복수극을 꾸미기에 이르러 오딘의 여자 친구인 데지, 절친한 친구, 마이클,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오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모함을 하는 등 온갖 중상모략을 통해 결국 오딘은 마이클과 데지가 바람이 난 것으로 오해해 휴고의 꼬임에 넘어가 그들을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어 그들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죽게 되고 자신이 휴고의 꼬임에 넘어간 걸 알게 된 오딘은 결국 자살을 택한다. 단지 아버지의 관심을 끌려하다 본래 의도를 망각하고 야욕에 휩싸여버린 휴고의 인생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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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품 《리어왕 King Lear》도 늙은 왕의 세 딸에 대한 애정의 시험이라는 설화적(說話的) 모티프를 바탕으로 깔고 있으나 혈육간의 유대의 파괴가 우주적 질서의 붕괴로 확대되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다.

인간성의 선·악의 문제가 이처럼 근원적 차원에서 다뤄진 작품은 좀처럼 찾기 힘들며, 또한 삶이 원초적으로 비극을 내포하고 있음을 조명(照明)한 경우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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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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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BETH 드라마 등장인물 관계도(디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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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품인 《맥베스 Macbeth》에서도 권력의 야망에 이끌린 한 무장(武將)의 왕위찬탈과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말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정치적 욕망의 경위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영혼의 절대적 붕괴라는 명제를 집중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주인공 맥베스는 악인이면서도 우리에게 공포와 더불어 공감을 자아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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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막.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창작연대와 초연시기(初演時期)는 일반적으로 1605∼1606년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가 홀린셰드의 《스코틀랜드 연대기》에서 취재하였다. 스코틀랜드의 무장(武將)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에 현혹되어 기승을 부리는 부인과 공모하여 자기의 거성(居城)을 방문한 국왕 던컨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 자손이 장차 왕자가 된다는 예언을 믿고, 친구 뱅코 부자(父子)의 암살을 계획하지만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맥베스의 폭정을 저주하는 소리가 전국에 퍼지고 반란이 일어나자 맥베스는 다시 마녀를 찾아가 예언해줄 것을 요구한다. 마녀는 버넘의 숲이 그의 성을 공격하지 않는 한 안전하며, 여성으로부터 출생한 사람은 결코 그를 패망시킬 수 없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던컨왕의 유아(遺兒) 맬컴을 추대한 맥더프가 인솔한 군대는 버넘 숲 속의 나뭇가지를 베어 들고 몸을 감추면서 맥베스의 성(城)을 공격한다. 이때 부인이 미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망하던 맥베스는 최후의 용기를 내어 싸우지만 맥더프가 어머니의 배를 절개하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자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대결 끝에 맥더프에게 살해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 중에서 가장 짧으며 진행의 템포도 빠르다. 이 비극을 소재로 한 오페라로는 베르디 작곡의 4막 가극이 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의 교향시(交響詩:작품 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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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BETH(오손 웰즈)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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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BETH: 감독 폴란스키(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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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감독) :거미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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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비극은 셰익스피어극의 절정이자 세계문학의 금자탑(金字塔)으로서 이 시기에 씌어진 로마 사극도 비슷하게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줄리어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는 이상주의자 브루투스와 현실정치가 안토니우스의 대결을 통하여 브루투스의 패배에서 얼핏 햄릿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든 것을 표출하였다는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는 뛰어난 자기완결적(目己完結的)인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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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665912

Posted by silb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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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영화3 (신대륙 발견과 그 이후 미국에서 생긴 갈등 b )

신대륙 아메리카 발견 이후-청교사회-인디언-남북전쟁(주홍글씨.라스트 모히칸.늑대와 춤을.국가의 탄생.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 장 짜리 ---->  프린트)

 

 

 

1.라스트 모히칸-늑대와 춤을 (인디언 문제)

2.주홍글씨(초창기 청교도 사회)

3.국가의 탄생-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노예해방-남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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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모히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720

 

http://www.movist.com/movist3d/movie.asp?mid=3261&op=

 

소설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 1789-1851)

뉴욕 주 쿠퍼스타운에서 출생.「개척자들」, 「파일러트」등 그의 작품은 잘 팔리는 편이었으나, 일생 동안 빚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1757년, 미국 식민지, 미국 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영불 전쟁이 3년째 접어든 해였다. 소멸해 가는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 세 사람이 허드슨 강의 남쪽 국경에 와 있다.

모히칸 족에 의해 자라난 호크아이(Hawkeye: 다니엘 데이-루이스 분)는 어렸을 때 살해당한 식민지 영국인의 아들로, 쇠망해가는 모히칸족의 추장 칭가치국(Chingachgook: 러셀 민스 분)과 그의 아들 웅카스(Uncas: 에릭 슈웨이그 분)에 의해 키워진다. 끊임없는 지도를 통한 삶으로부터 호크아이는 원주민들의 미덕과 기술을 배우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자, 호크아이는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자신의 위치를 ?닫게 된다. 땅과 부족을 잃은 칭가치국은 웅카스와 호크아이를 데리고 허드슨 계곡에서 덫사냥을 한 후에 칸-투-키(후일의 켄터키)로 가서 겨울을 지내면서 웅카스의 아내감을 찾는다. 그동안, 아버지를 찾아가는 코라 먼로(Cora Munro: 매들린 스토우 분)와 앨리스 먼로(Alice: 조디 메이 분)는 던칸 헤이워드(Heyward: 스티브 웨딩톤 분) 소령이 지휘하는 부대와 동행하면서 마구아(Magua: 웨스 스투디 분)라는 의심스러운 안내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간다. 프랑스편인 마구아는 그들을 함정으로 몰아넣고 먼로 자매는 호크아이, 웅카스, 칭가치국에게 구조된다. 그들의 목적지인 윌리암 헨리 요새로 가는 힘든 과정에서, 그후 며칠간 벌어지는 감동적이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

미국이 독립하기 직전, 뉴욕주의 죠지 호수와 허드슨강 상류 근처를 무대로 인디안 모히칸족의 마지막 후예와 그들에 의해 키워진 백인 청년의 모험과 투쟁, 사랑을 파란만장하게 그린 대작 서부극. 미국 서부 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제임스 F. 쿠퍼(James Fenimore Cooper: 1789-1851)의 소설을 원작으로, 36년 랜돌프 스코트가 주연하여 영화화하고, 77년에는 TV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수 차례 영화화 된 바 있다. 마이클 만의 이번 작품은 두 주인공의 로맨스에 비중을 두었고, 잔인한 느낌의 사실적인 액션씬이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

클라이맥스의 인디안-프랑스 전쟁의 전투씬을 비롯한 큰 스케일과 정통적인 웨스턴의 서정을 조화시켰다. 영국 출신의 연기파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인디언에게 키워진 백인이기는 하지만 인디언 역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무척 이색적이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커다란 총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서부극은 인디언들을 인간답게 묘사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직선적이고 강렬한 액션이 인상적이며, 남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매들린 스토우의 아름다움, 조연과 악역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며, 특히 영화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배경 음악이 훌륭하다.

번역된 책들도 같은 제목으로 나오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것은 꼭 모히칸족들이 마지막으로 싸우다 장열하게 전멸하는 이야기인 듯한 제목이다. 그러나 여기서 'Last'는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제대로 번역을 하자면 '마지막 모히칸족'이 더 적당할 것이다.

1757년의 북미를 배경으로 미국 원주민들과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영국과 프랑스의 미묘한 갈등이 복합적 구조로 나타나 있다.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미국을 가운데 놓고 프랑스와 벌이는 대전투, 독립을 꿈꾸는 미국과 자신들의 땅을 찾으려는 인디언 원주민들, 서로의 이익 추구를 위해 흘린 피는 밤목의 깊이를 더하고 사랑은 어렵게 시작된다.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태동했는가를 형상화시킨 문학적 업적들 중 하나인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고전적 소설을 극화한 이 영화는 세부적인 묘사의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개척지란 영국과 프랑스의 광활한 미대륙에 대한 지배권 쟁탈전, 원주민인 인디언으로부터의 위협, 문명과 야만의 싸움 등 대립되는 힘들이 서로 충돌하는 곳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cO4amwCLEs
  

늑대와 춤을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244

http://www.movist.com/movist3d/movie.asp?mid=144

 

던바가 구해준 백인 여자는 어려서 붙잡혀와 거의 영어를 못했지만 약간의 통역을 할 줄 알아 이들과의 대화를 연결해 준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현명한 인디언 족장 '열마리 곰(Ten Bears)', 인자하고 너그러운 '새 걷어차기(Kicking Bird)', 용감한 청년 '머리에 부는 바람(Wind In His Hair)', 그리고 인디언이 된 백인 여자 '주먹쥐고 일어서(Stands With A Fist)', 이들 인디언들이 마치 한 형제들처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수우족은 아주 선량한 인디언으로 알려져있다. 기껏해야 말을 도둑질해가는 정도였고, 부락 내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반면 모호크족이나 포니족들은 인디언들내에서도 자주 습격을 하여 약탈을 하거나 인명을 살상하는 등 포악한 종족으로 소문나 있었다. 인디언 중에서도 수우족같은 평화적인 종족이 있는가 하면, 포니족같이 포악한 종족, 백인들 가운데서도 던바와 같은 평화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기병대가 상징하는 제국주의자가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포니 족의 침략이 다가오자, 수우족의 용사들도 출동한다. 함께 가려던 던바는 수우족의 가족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남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부락에 포니족이 침입해 위기에 빠진다. 이에 던바는 오두막에서 많은 총을 가져와 결국 포니족을 물리쳐낸다. 그러는 사이 던바는 주먹쥐고 일어서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부족의 청년과 결혼했는데, 던바가 발견했을 때 포니족에 의해 남편이 죽고 그녀도 부상을 입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인디언 풍습으로 우는 시간, 즉 일종의 남편 상 기간이었는데, 이것이 끝남이 허락되어 마침내 던바와 결혼하게 된다. 던바는 이제 기병대 소대장이 아닌 수우족의 인디언 늑대와 춤을로 다시 탄생한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백인들의 진짜 야욕을 '늑대와 춤을'에게 물어볼 때가 된 것이다. 늑대와 춤을은 이제 인디언으로서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다 털어 놓는다. 엄청난 수효의 백인 기병대들이 머지않아 이 평화로운 인디언 지역을 침범할 것이라고. 족장 열마리 곰은 오랫동안 가보로 간직해온 물건을 꺼내보인다. 그건 옛날 포르투갈 군인들이 쓰던 투구였다.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백인들은 우릴 공격해왔다. 그때 우리들은 용감하게 싸워 그들을 물리쳐냈다. 그러나 백인들의 침략성은 끝없이 이어져 내려온다.". 족장 열마리 곰은 이제는 중과부적이라 대항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늑대와 춤을은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소중한 일기장을 두고 온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러나 인디언 복장을 한 던바는 기병대에 포로로 잡힌다. 그리고 배반자, 밀정이라는 낙인과 함께 온갖 폭행을 당하고 후방으로 후송되어간다. 던바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염탐나온 수오족 부하들은 그들이 통과하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습격을 감행, 던바를 구출해낸다. 같은 백인도 오히려 다른 인종인 인디언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던바는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수오족에게로 돌아와 아내와 뜨거운 재회를 한다. 그들은 기병대를 피해 계속해서 눈내리는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던바는 자신 때문에 수오족이 해를 끼칠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수우족을 떠난다.

"13년 후, 그들의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그들의 버팔로도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수우 족(Sioux)은 네브라스카 로빈슨 요새(Fort Robinson, Nebraska)에서 백인에게 항복했다. 평원의 위대한 기마민족 문화(The Great Horse Culture)는 사라지고, 서부 개척(the American Frontier)은 역사 속으로 소리없이 묻혀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5nU148c3T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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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 유럽’의 수치, 인디언 학살
  • 라스 카사스와 세풀베다의 논쟁: <제국과 파괴>

아메리카 대륙의 소유권에 관한 논쟁은 ‘신대륙’에서의 ‘대량학살’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 대한 소유권조차 가질 수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에게 생명권인들 존중될 것인가? 이 책은 1492년부터 1560년 사이 ‘신대륙’에서 약 4000만명이 사라졌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하루 평균 1611명이 죽었다는 또 다른 통계도 나온다. 여기엔 유럽에서 전파된 세균에 면역성을 갖추지 못한 원주민들의 죽음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량몰살에 대한 유럽의 책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유럽은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한 대량학살을 역사가 흘러가지 말아야 할 좌우의 양극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유럽 바깥에서 자행된 유럽 제국의 반(反)인류적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여전히 미흡하다. 비(非)유럽인이 ‘명품진보’인 양 유럽이 내세우는 인권적 표준에 맞춰 쉽게 장단을 맞출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이 책은 비유럽인들이 유럽의 포스트모던적 파라다이스에 매료되기 앞서 모던적으로 계산해야 할 역사적 장부가 아직 남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유럽인의 성찰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31/20070831011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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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n Reservation (The Lament of The Cherokee Indian)


They took the whole Cherokee nation
Put us on this reservation
Took away our ways of life
The tomahawk and the bow and knife
Took away our native tongue
And taught their English to our young
And all the beads we made by hand
Are nowadays made in Japan

Cherokee people, Cherokee tribe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They took the whole Indian nation
Locked us on this reservation
Though I wear a shirt and tie
I'm still part redman deep inside

Cherokee people, Cherokee tribe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But maybe someday when they learn
Cherokee nation will return,
will return, will return, will return, will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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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n Reservation -

-The Raiders & Paul Revere_
They took the whole Cheroke nation

그들은 체로키 땅 전부를 가져갔네

put us on this reservation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쳐박아두고

Took away our ways of life tomahawk

우리의 생활 방식 , 돌도끼

and the bow and knife

그리고 활과 칼 마저 가져가 버렸네

Took away our native tongue

우리의 모국어도 빼앗고

taught their English to our young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네

And all the beads we made by hand

그리고 우리가 손으로 꿴 구슬들은

are nowadays made in Japan

지금은 일본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네

Cherokee people, Cheroke tribe

체로키 사람들, 체로키 부족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자랑스럽게 살고 자랑스럽게 죽네

They took the whole Indian nation

그들은 인디안 부족 전부를 점령했네

locked us on this reservation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가둬놓았네

Though I wear a shirt and tie

내가 셔츠와 타이를 입기는 하지만

I'm still part redman deep inside

나는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선 인디안이라네

Cherokee people, Cherokee tribe

체로키 사람들, 체로키 부족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자랑스럽게 살고 자랑스럽게 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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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 Indian Reservation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C0%CE%B5%F0%BE%F0%BA%B8%C8%A3%B1%B8%BF%AA+%B9%CC%B1%B9&sm=tab_she

 레이더스 노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Z0gobSHgIs


https://www.youtube.com/watch?v=21ixwIaN7qw




https://blog.naver.com/mal3500/22108247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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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모히칸> 줄거리 보기

http://ggygy.blog.me/220604814790


 

<포카혼타스>

https://namu.wiki/w/%ED%8F%AC%EC%B9%B4%ED%98%BC%ED%83%80%EC%8A%A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14&contents_id=3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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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http://movie.naver.com/movie/bi/mi/point.nhn?code=17146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252

http://tsilberne.tistory.com/69

* 필그림 파더스 [Pilgrim Fathers]

1620년 북아메리카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구 식민지가 된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

102명의 정착민 중 35명이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네덜란드레이덴으로 피신했던 영국 분리주의 교회 성원(청교도 급진파)이었다.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찾고자 이들 분리주의자들은 아메리카로의 순례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런던의 한 주식회사와 협상을 했다.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해 아메리카까지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 중에서 반 이상은 이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비분리주의자였다. 이 최초의 정착민들은 처음에는 ‘올드 카머스’로 불렸다가 후에는 ‘포어파더스’로 불렸으며, ‘필그림 파더스’[]라고 알려지게 된 것은 이들이 도착한 지 2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1820년에 행해진 200주년 기념식에서 웅변가 D.웹스터가 ‘필그림 파더스’란 용어를 사용했고 그 후에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 영국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의 이혼문제로 부터 촉발 - 영국 성공회가 국교가 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26616&cid=56790&categoryId=5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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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Puritan]

16~17세기 영국 및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칼뱅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은 프로테스탄트 개혁파를 일컫는 말.

‘퓨리턴’이라고도 한다. 1559년의 엘리자베스 1세가 내린 통일령에 순종하지 않고 국교회 내에 존재하고 있는 로마가톨릭적인 제도 ·의식()의 일체를 배척하며, 칼뱅주의식 투철한 개혁을 주장하였다. 엄격한 도덕, 주일(:일요일)의 신성화 엄수, 향락의 제한을 주창하였다. 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에 비국교도로서 심한 박해를 받고 네덜란드와 기타 지역으로 피해 갔다. 그 중에서도 신대륙의 플리머스에 식민지를 개척한 메이플라워호()의 ‘필그림 파더스’는 유명하다. 청교도는 점차로 절대왕정에 대한 정치적 요구와 결부하여 의회에서 유력해지고, 1642년에 일어난 청교도혁명의 주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교도 내부에서도 크게 장로파()와 독립파()로 분열하였다. 청교도 문학으로는 밀턴의 《실낙원( 》이 대표적이다.

Celtics.com - The official website of the Boston Celtics.

http://www.nba.com/celtics/

http://100.naver.com/100.nhn?docid=741563

WASP

http://100.naver.com/100.nhn?docid=756180

 

작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미국의 작가. 세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이와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서 지냈다. 처녀작 「판쇼」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뒤늦게 쓰기 시작한 「주홍 글씨」로 명성을 확립했다.

소설 줄거리

뉴잉글랜드의 어느 도시 형무소근처 교수대위에 생후 3개월이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가 앞가슴에는 예쁘게 수놓은 주홍색 A라는 글씨가 선명한 옷을 입고 있었다. A는 간통(adultery)의 첫 글자이다.

그녀의 이름은 헤스터 프린이었다.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의 학자와 결혼했고 남편보다 먼저 미국 땅에 건너왔다. 헤스터프린의 뒤를 따라 곧 오기로 되어 있는 남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소식도 끊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죽었다고 했다.

그 무렵 오랜 세월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헤스터의 남편이 나타났다. 그 는 헤스터와 간통한 사나이에 대해 복수할 결심을 하고 로저 칠링워드라는 의사로 신분을 바꾸고 도시로 들어왔다.

헤스터는 교외의 초가집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그녀의 딸 펄은 친구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또한 옥스퍼드 출신의 수재인 딤즈데일 목사는 엄격한 고행으로 쇠약한 상태에 빠져 건강 상담역인 칠링워드와 공동 생활을 하게 되고 의사는 어느 날 딤즈데일의 가슴에서 주홍 글씨를 목격하게 된다. 7년이 지난 오월의 밤, 딤즈데일은 밤일에서 돌아오는 헤스터 모녀와 셋이서 교수대 위에 서자고 한다.

그의 고민을 알게 된 헤스터는 칠링워드에게 딤즈데일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남편이 거절하자 딤즈데일에게 남편의 정체를 밝힌다. 축제 일에 설교를 하게 된 딤즈데일 목사는 헤스터 모녀를 불러 교수대 위에서 청중들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그대로 죽고 말았다. 칠링워드는 살 의미를 잃고 곧 죽었으며, 교양있게 자란 펄은 외국에서 결혼했고, 고향에서 깨끗이 살다 죽은 헤스터는 딤즈데일 목사의 무덤에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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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성직자 아더 딤즈데일과의 정사 후에 아이를 갖게 되어 결국은 간부(姦婦)로 낙인찍히고 경건과 순결을 강조하는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수치스런 처벌을 받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의 냉소와 따돌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대범하고도 열정적으로 지켜나가는 관능적인 젊은 여인이다. 그녀는 아더 딤즈데일과의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불륜의 표시로 붉은색의 'A'가 새겨진 옷을 항상 입고 다녀야만 했는데, 경건과 순결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던 그 당시의 청교도적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자신이 택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수치심을 억누르며 속죄의 나날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가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은 헤스터 프린이 불륜을 저지르고 딸을 낳은 후의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루는 반면, 시나리오는 불륜과 그 직후의 일들에 초점을 맞추어 극적 통일감을 주고 있다. 따라서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의 흥미와 극적 긴장감을 더하기 위하여 헤스터 프린의 목욕 장면이나 마녀 재판 부분, 헤스터 프린의 남편 로저 칠링워스의 죽음 장면 그리고 청교도와 인디언들이 대규모의 전투를 벌이는 장면 등 소설에서 접할 수 없는 소재들은 다루었다. 또한 아더 딤즈데일이 헤스터 프린의 품에서 회개하며 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나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맺는다.

 

http://ko.wikipedia.org/wiki/%EC%A3%BC%ED%99%8D_%EA%B8%80%EC%94%A8

 

한국영화 (주홍글씨) : 한석규.이은주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8408

 

영화 <크루서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183

1692년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 신에 귀의한 어느 공동체 마을. 마을 어른들의 경건하고 도덕적인 종교적 생활에 짓눌려 숨이 막힐 지경인 10대 소녀 몇 명이 숲 속에서 벌거벗은 채 춤을 추며 악마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인 에비게일 윌리엄즈(Abigail Williams: 위노나 라이더 분)란 소녀, 그녀는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있는 농부 존 프록터(John Proctor: 다니엘 데이-루이스 분)와 육체 관계에 빠져 그의 부인(Elizabeth Proctor: 조안 엘렌 분)을 죽이려는 충동을 느낀다. 그 일 이후 세일럼 마을에는 갑자기 악마가 만연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춤추는 모습을 들킨 소녀들은 자신들의 끔찍한 행동에 악마가 찾아들었다고 얘기하게 되고, 마을을 온통 마법과 악마에 관한 아우성으로 떠들썩하게 만든다. 소녀들의 집단 광란에 의해 세일럼의 사람들은 마녀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둘씩 교수대의 무고한 희생자로 사라지지만, 에비게일의 프록터 부인을 향한 증오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소녀들의 잘못된 사랑과 질투에서 시작된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종교의 중압감과 더불어 극도로 치닫게 되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던 프록터와 그의 아내를 오히려 곤경에 빠뜨린다.

<원작 > 미국 극작가.아더 밀러: The Crucible.도가니.시련.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5%84%EB%8D%94+%EB%B0%80%EB%9F%AC%EC%9D%98+%E3%80%8E%EC%8B%9C%EB%A0%A8%E3%80%8F%3A+%27%EB%A7%88%EB%85%80+%EC%82%AC%EB%83%A5%27%EC%97%90+%EB%82%98%ED%83%80%EB%82%9C+%EA%B4%91%EA%B8%B0+%EB%B6%84%EC%84%9D&sm=top_sug.pre&fbm=0&acr=2&acq=%EC%95%84%EB%8D%94+%EB%B0%80%EB%9F%AC%EC%9D%98&qdt=0&ie=utf8

<voodoo 교>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03696&mobile&categoryId=200000125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20

 

작가

마가레트 미첼(Margaret Mitchel, 1905-1949)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서 출생. '애틀란타 저널'에 입사해 5년 동안 인터뷰 기사 등을 담당해 뒷 날 거작의 성공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다. 10년 동안의 조사와 집필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완성했다.

줄거리

스칼레트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쌍동이 형제가 그러했듯이, 일단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그녀를 굉장한 미인으로 아는 것이었다.

스칼레트는 애쉴레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가 사촌 누이동생인 멜라니와 약혼하자 분통을 터뜨린다. 스칼레트는 애쉴레에 대한 복수심으로 멜라니의 오빠와 결혼을 한다.

남북전쟁이 터지고 미망인이 된 스칼레트는 애틀란타 시로 나와 임신 중인 멜라니와 함께 육군 병원에서 봉사한다. 북군에 의한 해안 봉쇄 때문에 물자 부족으로 곤란을 받는 애틀란타 시에 레드 버틀러가 나타난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자를 보급하여 영웅 대우를 받았다. 그는 스칼레트의 환심을 사느라 애를 쓴다. 남군은 계속 후퇴하고 북군이 애틀란타에까지 밀어닥쳤다. 스칼레트는 산달이 찬 멜라니를 데리고 피난 하여야만 했다. 거기에 버틀러가 마차를 끌고 와 탈출을 도와준다. 그리고 헤어질 무렵에 강렬한 키스를 남겨놓고 사라진다.

남군은 패하고 고향 타라의 농장도 폐허화했다. 어머니는 병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정신 이상을 일으켜 폐인이 되어 있었다. 불같은 그녀의 성격은 곧 되살아나, 돈을 위해 애정 없는 결혼을 하지만 둘째 남편 프랭크 케네디도 비밀 결사에 가입한 일로 해서 죽고, 거기에 레드 버틀러가 나타나 두 사람은 곧 결혼한다. 멜라니가 죽은 뒤 애쉴레는 눈에 띌만큼 스칼레트에게 접근해 왔지만 이번에는 스칼레트 쪽에서 사랑이 식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레드 버틀러를 사랑하게 될때쯤, 레드의 마음이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포니에게만 사랑을 쏟는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포니가 죽게 되자, 레드는 모든 흥미를 잃고 집도 아내도 버리고 여행길에 나선다.

스칼레트는 슬픔에 잠긴 중에도 원래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불끈 머리를 쳐드는 것이었다. "반드시 레드의 사랑을 돌이키고야 말겠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 지쳐 있다. 내일에는 다시금 내일의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 Tomorrow is another day !)

 

2013. 링컨 (정치 영화)

 

 

 

http://blog.naver.com/cine212722/100184675969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5722

 

버틀러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757

 

미국 메이저 리그 최초 흑인선수: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7697

 

 

국가의 탄생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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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호 선상반란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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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영화 2 (신대륙 발견과 그 이후 미국에서 생긴 갈등 a )

1492-콜럼버스-아미스타드-만딩고-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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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2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369

 

 

       

        아미스타드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844

 

 

 

 

 

        만딩고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0380

http://blog.naver.com/cine212722/100139502929

2013. 링컨 (정치 영화) >http://blog.naver.com/cine212722/100184675969

 

 

* 인종차별 비판 영화 목록 나열해 보기 .................................................

 

* 21세기에도 노예무역이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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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ISSION

 

" 이 영화는 175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실화이다"

" 교황님의 영토 끝에서 발생한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인디언들은 다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인의 노예가 될 겁니다. 시작이 맘에 안 드는군, 다시 고치게. 교황님, 1758년, 지금 저는 남미 대륙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여긴 남미 라플라타의 앙상센이란 마을인데, 산 미겔 선교회에서 도보로 2주 걸립니다. 이 선교회는 개척민들로부터 인디언을 보호하려 했으나, 오히려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이곳 인디언들은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여, 로마에서 연주되는 바이올린도 그들이 만든 것이 많습니다. 이곳으로 파견된 예수교 신부들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오히려 순교를 당하게 됐습니다"

1750년, 스페인과 포루투갈은 남미 오지에 있는 그들의 영토 경계 문제로 합의를 보았으나 유럽 한구석의 탁자 위에서 그은 선이 얼마나 끔찍한 사태를 불러 일으킬 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제수이트 신부들은 과라니족을 감화시켜 근대적인 마을로 발전시키고 교회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신부들 중에 악랄한 노예상이었던 멘도자(Mendoza: 로버트 드니로 분)는 가브리엘 신부(Gabriel: 제레미 아이언스 분)의 권유로 신부가 되어 헌신적으로 개화에 힘쓰고 있었다. 새로운 영토 분계선에 따라 과라니족의 마을은포루투갈 식민지로 편입되고, 불응하는 과라니족과 일부 신부들을 설득하려는 추기경이 파견되지만 결과는 포루투갈 군대와 맞서 싸운 과라니족의 전멸로 끝난다.

"그리하여...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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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경,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 부근에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원주민 과라니족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이는 두 선교사의 대립되는 모습을 통해서 종교와 사랑, 정의가 무엇인가를 심오하게 그린 종교 영화. 1986년 제39회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야만의 땅 라틴 아메리카에 진리를 전하고자하는 산 크를로스 선교회 소속의 가브리엘 신부는 몇 동료 신부들의 죽음으로 결국 험악한 지형의 폭포수 위에 사는 과라니족들을 선교하는데 성공한다. 용병 출신의 원주민들을 팔아버리는 야만성을 서슴없이 하는 노예상인 로드리고는 자신의 부인과 동생이 서로 사랑함을 알고 격분해 결국 동생을 죽이고 만다. 그는 그런 식민지적 잔혹성에 반성을 했다기 보다는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가브리엘 신부를 따라 사죄의 길을 걷는다. 과라니족은 자기의 형제를 팔아 넘긴 로드리고를 용서하고 로드리고는 가브리엘을 도와 원주민들만의 복음으로 가득찬 왕국을 건설하려한다. 하지만 교황청은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이권 다툼에 끼여이 땅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묵인하고 만다.

성품과 인간형이 서로 상반된 예수회의 두 신부, 가브리엘와 로드리고 신부는 바로 '기독교적 사랑'과 '사회적 정의'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영토 분쟁 속에 있는 과라니 족이 카톨릭을 따르는 포르투칼로부터 보호하고자 원주인들과 함께 피땀 흘러 이룩한 선교구가 예수회와 포르투칼의 관계를 염려한 교회에 의해, 악명높은 노예 제도를 합법화한 포루트칼 왕의 식민지에 편입되자 이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원주민들에게서 떠나라고 한다. 마침내 로드리고는 청빈, 정결, 순명, 그리고 교황께 순종이라는 예수회의 4가지 허원 중에서 순종의 맹세를 버리고 원주민들을 위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이 때 가브리엘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 손을 피로 물들이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네. 자네는 하나님께 목숨을 바쳤잖나. 하나님은 사랑이야." 가브리엘 신부는 평화 주의자이지만 그는 평화주의도 능동적인 힘을 발휘하려한다. 인디오들과의 생활 이후 가브리엘 신부는 교회에 대항하는 힘을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한다. 가브리엘 신부는 무기를 쥐지는 않지만 인디오의 마을을 떠나라는 교회의 명령을 거부한다. 가브리엘 신부는 교황청의 철수령에 회의를 느끼고 마지막까지 신이란 무엇인가를 외치며 방황한다. 그는 마침내 신앙의 힘은 바로 사랑이라는 해답을 얻은 뒤에 무기없이 싸움에 나선다. 전투에 나서기 전 축복을 구하러 온 로드리고에게 가브리엘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할 수 없소. 당신이 옳다면 하느님이 지키시겠지, 하지만 옳지 않다면 축복은 무의미해. 무력이 정당하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었집니다. 틀림없이 그럴것야. 나는 그러한 세상에서는 살아갈 힘이 없어짐니다. 축복도 할 수 없소, 로드리고." 마침내 스페인 군대의 막강한 화력과 병력 앞에 하나씩 쓰러져가는 원주민과 사제들. 그리고 복음의 땅은 불길로 휩싸이고 만다. 살아남은 과라니 족의 아이들이 모여서 폭포의 더 높은 상류로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추기경이 숨진 두 신부와 원주민들에 대한 독백으로 끝맺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 족의 멸종으로 끝났고 저는 살아남았읍니다. 그러나 저는 죽고 그들은 살았읍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겁니다." 로드리고나 가브리엘 두 사제 모두 카톨릭교가 가난한 자와 억압받고 있는 자를 구원하고 해방시키는 일에 앞장서야한다는 점에 있었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회적 활동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두 성직자들을 괴롭히고 마침내 각각 다른 순교의 길을 걷게 만든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가? 복음의 진리와 정치적 참여 사이에서의 선택은 로드리고와 가브리엘 신부의 비극적인 순교가 있은 지 1세기가 지난 오늘 날에도 여전히 현대의 많은 성직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딜레마로 남아있다. (KBS-FM 이선영의 영화음악실에서)

해설:

미션(a 로보트 드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86

 

 

 

 

미션(b 음악 포함)

 

넬라 판타지아

https://www.youtube.com/watch?v=NTKOyUWRO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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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지역에서 브라질에서만 포르투갈어를 쓰는 이유?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T9WB2CoH6oR2pzKSEPIIQ9mSzaFwS64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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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선조들 노예무역 참회합니다”
  • 영국·유럽상인들 손으로 300년간 1500만명 넘겨

    노예무역법 폐지 200주년 1000여명 가두행진 참석

24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인근 노예무역 참회 행진에서 백인 참석자들이 과거 흑인 노예처럼 나무 멍에를 하고 쇠사슬에 묶인 채 걷고 있다. 런던=김영진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26/2007032600018.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26/20070326010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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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레포트:

1.미국내 흑백 갈등의 뿌리는 언제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2.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언제, 무엇에 저항했는가? 그를 죽인 세력들은?

3.소위 말하는 <LA 폭동>의 진상은 무엇인가?

4.아내 살인 혐의를 받았으나무죄 선고를 받은 흑인 스포츠맨 오 제이 심슨 이야기.

5.모든종교가 항상 어디서나 <선교활동>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

6.천국과 극락은 전혀 별개의 세계인가?

7.오바마는 물라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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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영화1(로미오와 쥴리엣)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상업도시. Verona.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사랑

ㅣ ------------------> 충돌. 좌절

고루한 도덕과 인습의 벽

로미오와 쥴리엣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85

 

 

로미오가 죽이게 되는 티볼트는 쥴리엣의 사촌오빠 이름.

쥴리엣의 아버지가 강제로 결혼시키려하는 백작 이름은 패리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에서운명에 꼬인 두 연인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 그들 부모의 분쟁을 종식시킨다.

몬태규가와 캐플렛가는 일찍부터 서로 반목 질시하는 명문가이다. 이들은 원수지간으로 항상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캐플렛가의 축제에 참가한 몬태규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렌스신부 도움으로 집안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사소한 언쟁으로 시작된 다툼으로 양가 친족들 사이에 칼부림이 일어난다. 친구인 마큐시오가 살해되자 로미오는 이를 복수하기 위해 줄리엣의 사촌오빠 티볼트를 살해하고 추방령을 받는다.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하루밤을 함께 지낸후 로미오는 만토바로 도피한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패리스 백작과 결혼하게 된 줄리엣은 로렌스신부가 준 비약(秘藥)을 먹고 42시간 동안 가사(假死) 상태로 가족 납골당(納骨堂)에 안치된다. 원래 계획은 가짜 장례식이 끝나고나서 줄리엣이 로미오를 찾아가도록 되었었으나 일이 중간에 꼬이게 된다.줄리엣이 죽었다는 기별을 받은 로미오는 납골당으로 달려와 애인이 정말 죽은 줄 알고 음독 자살한다. 가사상태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모든 진상을 알아채고 단검으로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다음날 현장을 발견한 양가는 후회하며 화해한다.

 

너무나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연애비극을 프랑코 제리렐리 감독이 당시 16세이던 레오날드 파이팅과 15살의 올리비아 핫세를 기용하여 신선하고 대담한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작품. 니노 로타의 주제곡이 특히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추억의 명작으로, 특히 청순한 외모의 올리비아 핫세는 수많은 남성 관객들의 가슴을 적신 이름이었다. 아이처럼 맑은 눈동자와 윤기 넘치는 긴 생머리의 그녀는 당시 청소년들의 사진첩과 책받침을 장식한 우상으로, 요즘의 스타들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흡입력 있는 70년대 젊은이의 대표적인 스타였다. 아카데미 음악, 촬영상 등 2개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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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줄리엣의 비극…미성숙한 전두엽 때문이라고?

우리아이 왜 이럴까?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20/20070320008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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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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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라모스 -티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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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Musical)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563

 

1940년대미국. 뉴욕.웨스트사이드. 젊은이들이 텃세 싸움을 되풀이. 그들은 이탈리아계의 제트단과 푸에르토리코계의 샤크단으로, 서로 앙숙관계에 있는 불량그룹이다.

샤크단의 리더 베르나르드에게는 아니타라는 애인이 있다. 주도권을 다투는 그들은 리브가 거느리는 제트단에 도전한다. 리브는 토니에게 같이 합세할 것을 요청한다. 제트단의 댄스 파티가 한창일 즈음, 샤크단의 도전장이 날아들어 체육관은 삽시간에 댄스 시합장으로 변해버린다. 두 개의 그룹이 참가한 댄스 파티는 살기가 등등했다. 그 가운데 한쌍의 남녀가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토니와 베르나르드의 동생 마리아, 두 사람은 서로 한눈에 반한다.

마리아는 그날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비상계단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토니가 와 있었다. 어둠속에서 사랑의 말을 나누고춤을 추면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어느 날 고속도로 아래에서 리브와 베르나르드가 결투를 벌여 리브는 죽음을 당한다. 그러자 토니는 베르나르드를 죽인다. 오빠를 죽인 사람이 토니라는 것을 안 마리아는 토니를 힐책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샤크단의 치노가 토니의 목숨을 노린다. 이것을 안 마리아가 토니를 찾아 나서고, 그를 발견한 순간 치노의 총탄이 토니의 가슴을 관통한다. 그때서야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한 제트단과 샤크단은 함께 토니의 시체를 운반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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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레포트 >

<미니 논술>

(1)증오와 편견 때문에 생기는 비극적 이야기들. 사람들은희생자들이 생긴 다음에 뒤늦게 후회하고 반성한다.

이런 슬픈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을까?

<가상 미니 드라마 또는 개그 코너 대본 쓰기>

(2)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들과 자식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 드라마로 꾸며 쓰기. 또는 코믹한 개그 코너 대본으로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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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로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필수 배낭여행 코스 >

http://blog.naver.com/2lili?Redirect=Log&logNo=20034103157

http://blog.naver.com/themagnus?Redirect=Log&logNo=100035440091

http://blog.naver.com/yugyug2?Redirect=Log&logNo=110002796897

줄리엣의 발코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창이 닫힙니다

이탈리아 베로나.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줄리엣의 집이다. 벽에는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다짐하는 의미가 담긴 메모를 적어 껌으로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195894&docid=74247&dir_id=100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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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독문학과 > 독일 영화 감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감독 프리츠 랑  (0) 200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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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초현실적, 환상적 소재를 구사하여 몇 중으로 소외된 현대인들의 절망, 좌절, 불안, 공포를 냉철히 정관하면서 그것을 리얼하고 실감나게 묘사한 20세기 최대의 소설이다. 그는 생전에는 극히 제한된 일부에게만 인정되다가 사후 그의 친구인 막스 브로트(Max Brod, 표현주의 작가이다)에 의해 유고(遺稿)가 발표되자 실존주의의 유행과 발맞추어 실존주의 문학의 원류로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작품들은 독일어권이 아닌 프랑스, 영국, 미국 등지의 외국에서 문제가 되고 높이 평가되어 그의 문명이 일약 세계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역수입이 되어 독일에서도 정당한 평가 받아 신진작가들에게 크게 어필되었다. 지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온 세계에서 무수한 카프카 관계의 연구서가 출판되고 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당시는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의 수도 프라하(Prag)에서 유태인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하고 아집이 세고 이해심이 부족하고 사나운 면이 있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학구적인 가계 출신으로서 선량하고 마음씨 고운 부드러운 여성이었다.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해서 평생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열등감을 가졌었다고 한다. 독일어로 초, 중 교육을 마친 다음 프라하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다. 이 시대에 그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되었고, 문학에 심취되어 창작을 시작하였다. 막스 브로트와의 친교는 운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우울했던 카프카를 문단에 끌어들였고, 카프카 사후(死後)에 유고(遺稿)를 발굴하고 지켜 전집을 출판하게 된다.

졸업 후에는 노동자 재해보험국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막스 브로트의 권유로 단편 『관찰 Betrachtung, 1912』, 『화부 Der Heizer, 1913』, 『판결 Das Urteil, 1916』 등을 발표하고, 이어 『변신 Verwandlung, 1916』을 발표하여 무질(Robert Musil), 슈테른하임(Carl Sternheim) 등의 일부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폐병을 앓게 되었고, 1차 대전 중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병이 악화되어 1917년에 휴직하고 요양생활에 들어갔다. 이 시기에 많은 단편을 썼고, 그리고 파스칼(Blaise Pascal), 키에르케고르 (Sören Kierkegaard)를 숙독했다. 그 후 몇 번 연애를 했으나 병상의 악화로 1922년에 작품 『성 Das Schloß』을 집필하면서 퇴직하고 창작에만 전념했다. 다음해 여행지에서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베를린(Berlin) 교외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비로소 수개월 동안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위압에서 벗어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병상이 악화되어 빈(Wien) 교외의 요양소에서 죽었다.

카프카의 짧은 생애에서 중요한 점은 프라하에서 유대인의 혈통으로 태어나 독일어로 교육을 받은 서방적 유대인이었다는 카프카의 위치이다. 서방적 유대인은 동방적 유대인처럼 절망적 가난에 허덕이지는 않았지만 유대교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고, 유대교에서 혐오하는 유럽의 개인주의 영향 아래 있었고, 소수의 독일인이 지배하던 프라하에서 유대인은 경시되었다. 그 당시 민족 해방을 주장하던 체코인들도 독일 교육을 받은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노동자 재해보험협회의 직원으로서 시민 계급도 아니었고 상인의 아들로써 노동자 계급도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카프카는 조국이라든가 공동 사회라는 관념보다는 이방인, 국외자라는 관념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는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적 경험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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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수도자 (Ein Hungerkünstler, 1921)

변신 (Die Verwandlung, 1912)

선고 (Das Urteil, 1912)

성 (Das Schloß, 1922)

소송 (Der Prozeß, 1915)

시골의사 (Ein Landarzt, 1917)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 1914)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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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수도자 (Ein Hungerkünstler, 1912/22)

이것은 관중에게 자신의 단식술을 보여주는 광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관중들은 관심은 처음에는 날이 갈수록 고조되어 밤에도 구경꾼이 몰려든다. 40일 후 흥행주는 단식 수도자에게 다시 음식을 조금 먹을 것을 설득한다. 그리고 관중들과 함께 단식의 성공적인 완료를 즐기는 작은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몇 년 후 카프카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상황이 급변한다. 단식가에 대한 관중의 흥미는 점점 줄어들어 이 사람은 어느 곡마단에 취직을 하게 되고 여기서 동물우리 옆방 하나를 배정받는다. 얼마 후 관리인이 이 광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만다. 그리하여 그의 단식일을 기록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계속 단식을 한다. 죽이 직전에 그는 자신이 광적으로 단식할 이유를 털어놓는다. 즉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빈 우리는 젊고 싱싱한 표범으로 채워진다.

이 작품은 세계 속에서의 예술의 문제 또는 수도자의 존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카프카로서는 이 당시 결핵의 발병과 세 번째의 파혼, 아버지와의 위기, 밀레나와의 체험 등 다양한 삶의 고통을 겪고 나서 죽음을 예감하던 시기였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예술적 삶에 대한 자기확인을 『단식 수도자』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그의 말년의 분위기는 절망이라든가 비극성, 문학적 생산이나 외부사회에서의 궁극적인 좌절감 등이 구조를 이룬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작품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단식은 예술의 허구적 변형으로 보인다. 작가 자신이 늘 문학적 생산에 회의를 느꼈고 외부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 내면세계의 문학을 고집한 것처럼 주인공의 단식술도 동일한 특성을 보여준다. 우선 그것은 무엇을 완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굶는 비생산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과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무능력,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창살 속의 좁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부자유, 바로 이것이 단식 수도자가 그 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가치이다.

그 자신만이 갖추고 있는 이러한 단식술은 시초에는 많은 관중이 몰려듦으로써 수도자의 내면적 세계가 사회와 커뮤티케이션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늘 재미를 찾는 관중의 일시적인 변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곡마단으로 쫓겨가고 거기서도 관중의 흥미는 동물들에게로 향하게 되어 결국 무관심 속에 죽는 것이다. 즉, 수도자의 궁극적인 소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다음에 보듯이 그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단식의 이유를 관중은 커녕 흥행주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0일이 된 지금에 왜 단식을 중단해야 하는가? 앞으로 얼마든지 더 견뎌낼 수 있는데, 왜 지금 그만둬야 한단 말인가? (……) 좀더 계속하려는 단식의 영광을 왜 박탈하겠다는 건가? (……) 한번은 어떤 인정 많은 사람이 나타나 광대가 우울해 하는 원인은 아마 단식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려 했다. 그때는 마침 단식이 절정을 향해 가는 때였다. 수도자는 그 설명에 갑자기 화를 내며 야수처럼 우리의 창살을 요란하게 흔들어 구경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벌써 흥행주가 즐겨 쓰는 해결책이 있었다. 흥행주는 관중 앞에 나가서 수도자를 위해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배불이 먹는 여러분께서는 아마 이해하기 곤란하겠지만 단식을 하던 사람이 성을 내기가 쉽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신다면 광대의 난폭한 행위를 용서할 수 있을 겁니다."

단식 수도자 자신이 스스로 만족을 찾아 선택한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단식에 대해 그 자신만이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관객이라고 할 수 있다.

40일이라고 하는 한계가 흥행주가 최대의 흥행효과를 위해 임의로 정한 기한이지 단식가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더우이 그는 40일이 경과하면 관중들 앞에서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새로운 단식에 도전한다는 우스꽝스런 의식을 위해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식사를 해야 한다. 그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관중 중에 누구도 없고, 둘도 없는 동료인 흥행주도 모른다. 그 결과 그는 항상 서글픈 심정이고, 그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기에 더 우울해지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의 단식은 구미에 맞는 제대로 된 음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음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을 지탱해 갈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작가적 환경으로 다시 눈을 돌릴 때 자신의 문학적 삶이 외부세계의 생존과는 양립될 수 없다는 카프카의 자기인식과 유사하다. 공동체와의 소통의 수단으로, 동시에 영위되지 못한 삶의 대체물로서 그의 문학은 아버지에게 끝까지 수용되지 못했고, 꿈 같은 내면의 기록이 사회에 이해되리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유고를 파기해 달라는 유언도 나온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주인공의 인식은 세계와 대치된 가운데 자신의 카프카의 자기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가 앓은 후두결핵은 실제로 그에게 아사선고를 내린 방이다. 그가 키얼링의 요양소에 있을 때 『단식 수도자』의 교정을 봤다는 사실은 수도자의 소외를 단식이라는 형태로 허구화시켰으리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카프카의 말년, 요양소에서 도라 디아만트와 더불어 그에게 헌식적인 도움을 준 로버트 클로크슈토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증언은 이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필사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 무렵의 카프카의 육체적인 상태나, 말 그대로 굶어 죽은 전반적인 상황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는 교정을 끝냈는데, 이것은 끔찍한 정도의 정신적인 긴장을 주는 작업으로서 감동적인 정신과의 재회였다. 이때 그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카프카에게서 이런 식의 감정표현을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늘 초인간적인 극기의 힘을 지녔던 것이다.

이 같은 증언은 『단식 수도자』에 스며 있는 작가의 강한 자기투영을 직감케 해준다. 그는 그로테스크한 아이러니의 수단을 자신의 예술성에 의문을 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의 젊은 표범의 모습은 외부세계의 삶이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는 다른 작품들의 자취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표범은 활동적인 사회적 삶의 요구를 대표하고 있다. 단식술을 지닌 수도자는 표범에 맞서 주장할 수 있는 바가 없다. 표범은 '아무리 우둔한 인간이라도 밝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즐비한 이빨 사이에라도 자유가 숨겨져 있는 듯한' 동시에 '생에 대한 환희가 목구멍으로부터 강한 열기를 내뿜는' 그 자태로부터 관객들의 환호를 살 만한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가 절대적인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정상적인 삶의 요구가 자기파괴적인 단식수도자 앞에서 무제한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관객의 반응을 전적으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이들 집단은 다른 한편으로 비정하고 만족만 추구하는 것으로 천박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어느쪽이 정당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따라서 예술과 활력적인 삶의 요구 사이에서 카프카는 분명한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언어기능을 상실한 『변신 Die Verwandlung』의 그레고르처럼 외부환경과 전혀 소통되지 못하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유일한 관객으로서 존재하는 단식가는 소외된 개체의 숙명을 조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와의 고통이 단절된 가운데 그 사회와 투쟁해야 하는 소외된 개체의 실존은 출구부재의 숙명적 순환으로 암시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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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Die Verwandlung, 1912)

이 작품은 『선고』와 달리 여러 차례 개작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것이고, 작가 자신도 "읽어줄 수 없는" 결말이라는 말로 은연중 불만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지만 유언에서 폐기 제외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애착을 느낀 것도 같다.

젊은 세일즈맨인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한 마리 흉칙한 벌레로 변신한 것을 발견했다. 출근시간이 지나도 기척이 없자 가족 들은 문을 두드리고 회사의 지배인은 왜 그레고르가 출근하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찾아온다. 불쾌해진 그는 그레고르의 수상쩍은 행동을 회사문제와 연관시켜 의심하고는 해고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레고르는 안으로 잠긴 문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려고 하지만 그의 목소 리는 남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얼마 후 힘들여 문을 열고 나간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 지배인은 혼비백산해 도망치고 부모는 충격을 받고 당황해 한다. 아버지는 위협적인 동 작으로 벌레를 다시 방으로 들여보내는데, 이때 그레고르는 큰 충격으로 상처를 받고 피를 흘린다.

주인공은 문틈으로 가족들을 관찰한다. 그의 모습에 질린 누이동생은 공포를 느끼며 그에게 음식을 갖다 주지만 그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2주일 후 어머니가 그의 방 을 찾아왔을 때, 그녀는 벌레의 형상에 놀라 실신하고 만다. 한번은 그레고르가 방에서 나 가자 아버지는 분노한 나머지 벌레에게 사과를 던져 심한 사어를 입힌다. 그레고르가 더 이 상 부양의 능력이 없자 가족들은 스스로 생활대책을 강구한다. 아버지는 은행에 일자리를 마련하고 방을 하나 비워 하숙인을 받아들인다.

어느날 저녁 누이동생이 저녁식사 후에 하숙인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 고 있을 때 음악에 이끌린 주인공은 거실로 기어 들어간다. 하숙인들은 벌레의 출현에 깜짝 놀라며 하숙을 해약하겠다고 위협을 한다. 누이동생은 벌레를 더 이상 오빠로 간주할 수 없 다며 벌레를 없앨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부모를 설득하다. 주인공은 힘없이 자기 방 으로 돌아와 죽는다. 하녀가 벌레의 시체를 치우고 한결 가벼워진 가족은 행복한 기분으로 휴일에 소풍을 간다.

그레고르 잠자의 운명은 이 작품에 앞서 1970년에 완성된 『시골에서 결혼 준비』에 나오는 라반의 꿈을 기억나게 해 준다. 라반은 여기서 자신의 옷을 입은 육체를 보내 세상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신 자신은 벌레의 형상으로 남아 침대에서 쉬고자 하 는데, 바로 순수자아의 의지와 달리 외부세계에 불과한 벌레 같은 존재라는 자의식이 두 작 품에 공통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독자도 변신의 이유를 모른다. 다 만, 육체와 달리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유지하는 그레고르의 사고를 통해 전반적인 삶의 환 경이 드러나는 가운데 어렴풋이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삶은 비참한 것이고, 또 직업이나 가족에 대해 불만이 있음이 밝혀진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낯선 상황의 발생에 대해 여러 가지로 원인분석을 해 보는데, 그의 일상이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늘 반기지도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세일즈맨이다.

나는 왜 하필이면 이런 힘든 직업을 택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출장을 다녀야 한다. 본점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업무상의 긴장감이 훨씬 심하다. 그 밖에도 여행의 괴로 움, 열차시간 접속에 대한 걱정, 불규칙하고 조잡한 식사, 항상 바뀌어 결코 지속되지도 못 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인간관계가 있다.

그레고르의 하루하루가 늘 피곤하고 불안에 쫓기는 것임이 돌발적인 상황에 서의 숙고로 인해 밝혀진다. 게다가 그는 가족에 대한 부양자로서 가족은 선량한 그를 이용 하는 생활구조이다. 이러한 일상에서 변신은 그레고르로 하여금 억눌러 온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계기라는 측면이 있다. 그는 사회 속에서의 온갖 인간관계에서 탈피함으로써 자신에게 늘 긴장된 업무를 강요하는 사회권력에 맞서고, 직장상사와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은밀한 소 망을 간직해 왔는데, 이것은 변신을 통해 그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외부세계에 대 한 저항의 상징으로서, 도전적인 잠재의식으로서 변신은 그레고르에게 노예 같은 생활을 벗 어나게 해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의 역할은 뒤바뀌어 가족은 생활전선에 나가야 하고 그는 기생적인 생존방식으로 쉬는 위치에 놓인다고 할 수도 있다. 이리하여 가족은 그를 없어져 야 할 무용지물이라고 여기게 된다. 가족의 입장은 사실상의 사형선고라고 볼 수도 있을 누 이동생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대변되고 있다.

"내쫓아야 해요" 누이동생이 외쳤다. "그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그 레고르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누이동생은 지금까지 그레고르가 가족 중에서 가장 사랑한 인물이고, 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자신의 후원으로 음악학교에 진학시키려는 계획까지 갖고 있었는데 그녀 로부터 가장 차갑게 따돌림 당하는 현실이 노출된다. 전반적인 상황을 검토해 본 그레고르 는 자신의 기생적 존재방식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족들을 원망함이 없이 화해의 감정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과 공격으로 생긴 상처가 점차 확대된 외부적인 요인도 없지 않지만, 죽음은 그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인상이 강하다. 그 레고르가 죽는 대목에서는 평화적 분위기마저 감돈다.

또한 마음이 느긋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전신이 아팠지만 아픈 것이 점점 가라앉아 머지않아서 완전히 가라앉고 결국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 같았다. 오래 전에 등 에 박혀 썩은 사과는 부드러운 먼지에 싸여 느끼지 않게 되었다. 수없는 동정과 애정을 갖 고 그는 가족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누이동생의 의견보다 훨씬 더 절실했을 것이다. 교회의 탑시계가 새벽 세시를 칠 때까지 그는 그처럼 허전하고 고요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가 자기도 모르게 수그러지고 콧구멍 으로부터는 마지막 숨이 힘없이 나왔다.

죽음에 대한 그레고르의 동의는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야기된 자신의 고립의 의지와 저항의 소망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카프카의 자아분열 이라는 공식에 대입해 보면, 외부사회에서 지치고 소외된 일상적 삶을 도피하는 방법으로서 의 변신은 실패한 것이고, 죽음과 타협함으로써 순수영역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타나토스적 욕망이 발동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신이라는 가상의 전제 앞에서 가족도 유죄 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비인간적인 속성 은 이전에도 드러나지 않다가 아들의 변신을 계기로 그 비천한 본질이 폭로되며, 벌레를 치 운 후 딸의 젊은 육체에서 미래의 희망을 기대하며 소풍을 떠나는 결말은 벌레의 비인간적 인 육체에 못지 않게 비인간적인 존재방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변신이라는 환상적 설정을 놓고 이것이 외형의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 면의 심리묘사'라는 해석도 있고, 병든 주인공의 망상으로서 '꿈으로 왜곡된 고독'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런 주장에 따른다면 카프카의 모든 작품은 꿈의 묘사이고, 내면의 심리나 망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카프카 의 환상적 모티프를 두고 '반동화(反童話)'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마법의 주문에 빠진 것 같은 상황이 동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인 반면, 동화와 달리 끝까지 이 마법에서 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적된 주장이다.

문제는 불가사의 리얼리티를 찾아내기 위해 동원하는 카프카 고유의 묘사 수 단, 즉 현실적 언어와 환상적 형상을 합성시켜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을 밝히려는 형상화의 스타일이다. 변신을 통해 자본주의적인 경쟁사회에서 쫓기고 소외된 생존방식이 각성되는 것이고, 인간 내면의 비인간적인 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동시에 작품의 말미에서 더 이상 아버지나 어머니, 누이동생이 아니라 잠자씨, 잠자부인, 잠자양으로 표현되는 가족의 움직 임은 외부세계의 생존방식으로서의 삶이 궁극적인 승리를 차지한다는 강한 암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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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Das Urteil, 1912)

이 단편은 1912년에 완성되고 1913년에 발표되었는데, 카프카의 일기에 따르면 9월 22일 밤 10시부터 23일 새벽 6시에 걸쳐 단숨에 쓰여졌다고 한다. 앉아 있는 동안 뻣뻣해진 다리를 책상에서 빼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브로트에게 보내는 유서를 통해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작가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의심의 여지없이' 마음에 들어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게오르크 벤데만은 젊은 상인으로서 3년 전부터 러시아에서 거주하고 있는 친구에 게 편지를 통해 자신이 유복한 집안의 딸인 프리다 브란덴펠트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 한다. 이어 편지 내용을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분명치 않은 비난 을 퍼붓는다. 아버지를 염려하는 게오르크는 그를 침대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 준다. 이때 아버지는 거대한 형상을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화를 내면서 게오르크가 자 신과 멀리 떨어진 친구를 져버렸다는 일종의 논죄를 한다. 프리다와의 약혼이 자신과 죽은 어머니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이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익사하라는 선고를 내린다. 게 오르크는 비틀거리며 집을 나와 강으로 달려가서 물속으로 뛰어든다. 일기에 의하면 이 글을 쓰면서 카프카는 브로트의 『아놀트 베어』, 또 자신이 이전에 일 기에 초고를 기록해 놓은 『도시의 세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되어 있다. 작가 자신이 작 품의 소재 원천을 밝힌 셈이다. 특히, 1911년에 기록된 『도시의 세계』는 『선고』를 집필 하게 한 동기를 주는 듯한 줄거리로 되어 있다. 즉 주인공 오스카는 방탕한 생활로 부모를 서서히 파멸시킨다는 비난을 아버지로부터 받는데, 이것을 일종의 살인고발로 간주한다면 『선고』에서 아들에게 내리는 아버지의 익사선고는 인과응보의 성격을 지닌다는 풀이도 가 능할 것이다. 한편, 이듬해인 1913년 일기에는 이 작품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단서가 될 표현이 나온다.

내 경우에 대한 『선고』의 결과들, 이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그녀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약혼녀 때문에 파멸한다.

여기서 그녀라는 것은 이 소설이 헌정된 펠리체 바우어를 말한다. 이 부분의 일기를 쓴 시 점은 결혼을 놓고 상당한 고민을 거듭하던 때로서 펠리체와의 약혼, 혹은 결혼에 대해 작가 특유의 양가치적인 평가나 망설임의 고백이 소설로 형상화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 속의 약혼녀 프리다 브란덴펠트가 펠리체 바우어와 똑같 은 F. B.의 두 음을 지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독자가 느끼는 최대의 의문은 게오르크 벤데만이 실제로 자신의 죄를 시인할 수 없다면 도대체 왜 아버지의 선고에 따라 자살하느냐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에 대해 대체로 서술시점의 기준이 되는 게오르크와 러시아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친구와 의 관계에서 그 해답을 읽어내고자 한다. 게오르크는 사업의 수완이 있고 사회에 적응력이 있는 성공한 인간인 데 비해 멀리 러시아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친구는 곤궁하고 병들었으 며, 사업적인 성공도 모르고 게오르크의 결혼을 부러워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독신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는 비범 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친구의 정체를 좀더 가까이 관찰해 보도록 하자.

그는 집안살림에 불만을 품고 몇 해 전에 러시아로 가버린 그 친구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어떤 사업을 경영해 처음에는 괜찮았던 모양이었으나, 수년 전부터 그의 귀향은 점점 드물어졌고 그때마다 고충을 털어놓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사업이 기울어진 것 같았다. 이 친구는 쓸데없이 외국에서 죽도록 고생만 했고, 어린 시절부터 낯익은 그 얼굴 에는 이채로운 수염만이 거칠었으나 누린 안색은 무슨 병에라도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하는 폼으로 보아 그는 동향 사람들인 그 지방의 독일 사람들과 별로 연락도 없었다. 게 다가 토착민과의 접촉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는 결정적으로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확 실히 길을 잘못 든 사람, 누구나 동정은 하면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도대체 뭐라고 편지를 쓴단 말인가.

친구의 묘사를 다소 길게 인용한 것은 이 인물이 본 작품의 해석에 열쇠가 되는 역할이라 고 보기 때문이다. 동시에 게오르크의 시점에서 보는 친구의 모습 역시 결정적이기 때문이 다. 친구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문학을 지향하는 작가의 형상과 동일하다. 카프카 자신도 문학 작업에 확신을 갖지 못했듯이 이 친구는 '사업이 기울었고', '병에 걸린' 모습이며, 그가 고독한 환경에 있는 것과 같이 '접촉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독신자'로서 살 아가고 있다. 그리고 문학이 쓸쓸한 작업이듯이 그 친구 역시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서 쓸쓸 히 생활하고 있다. 이 같은 친구의 존재와 시민적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게오르크의 관 계는 결혼과 문학을 놓고 번민을 거듭한 작가의 두 가지 존재방식이 투영된 것으로 여겨진 다. 즉, 결혼은 외부세계적 삶의 형태이면서 따뜻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는 데 비해 문 학의 길은 쓸쓸하고 곤궁한 독신자적인 삶의 방식인 것이다. 다만 문제는 두 가지 존재방식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인데, 익사선고를 통해 게오르크를 죽임으로써 외부세계 지향의 자아를 단죄하는 자의식이 엿보인다 할 것이다. 동 시에 고독하고 곤궁한 독신자의 삶이지만 순수자인 친구는 살아남는다. 여기서 게오르크의 아버지는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와는 반대의 역할을 한다. 즉, 헤르만 카프카는 실 제로 문학에 늘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여기서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친구를 지지하고 나중 에는 그 친구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기까지 함으로써 내면세계의 가치를 대변해 주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게오르크가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주는 행위는 아버지를 죽 이려는 무의식적인 제스쳐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럼으로써 계획된 프리다와의 결혼을 성 취하고 동시에 아버지의 지위로 올라서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친구를 지지하고 대변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보았을 때, 순수자아를 억누르고 일상적인 시민적 삶의 욕구를 성취하려는 분열된 자아의 의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는 게오르크 아버지의 형상화를 통해 평소 자신이 바라던 아버지 상을 표현한 것으 로 보인다. 그는 항상 문학작업을 통해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게오 르크의 존재방식을 향한 것이다. 게오르크의 아버지가 내리는 익사선고는 게오르크와 동시 에 시민적 존재방식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게오르크가 순순히 선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 버지 및 작가적 존재인 친구와의 결속을 염원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분열된 자 아로 보이는 친구와 달리 안정적 시민적 삶에 안주함으로써 고유한 본래의 소망을 벗어난 것에 자책하여 아버지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다. 시민적 존재에 대한 사형선고, 이것이 바 로 펠리체와 결혼을 놓고 고민을 거듭한 작가가 예술적 소망을 통해 내리는 내면적 결정이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펠리체 바우어에게 바쳐졌고, 게오르크의 약혼녀 프리다 브란덴펠트가 바우어의 모델이라는 배경을 생각할 때 주인공에게 내려지는 익사선고는 펠리체와의 결혼에 대한 순 수자아의 단죄라는 해석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선고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또하나의 자아는 결혼으로 인해 예술적 존재가 침해받을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작가가 마 음에 들어한 전기적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선고』야말로 카프카의 문학적 명제를 가 장 핵심적으로 요약한 단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예술적 삶이 외부 세계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의 소외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식의 에센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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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Das Schloß, 1922)

1926년 막스 브로트에 의해 발표된 이 소설은 『실종자』, 『소송 Der Prozeß』과 더불어 흔히 '고독의 3부작'으로 불리우는 장편으로서 형식적으로는 미완성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완성작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겨울밤에 K.는 성에 소속된 한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의 여관에서 그는 베스트베스트 백작이 직접 자기를 측량기사로 초빙했다고 주장한다. 이튿날 아침 K.는 성으로 가려고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여관으로 돌아와 두 명의 조수를 만난다. 이어 전령인 바르나바스가 클람이라는 고관이 서명한 편지를 가지고 온다. 내용은 성 당국에서 그를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저녁 K.는 술집에서 프리다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프리다는 클람의 애인으로서 K.에게 몸을 바친다. 이튿날 두 사람은 K.의 방에서 잠을 자며 보낸다.

도착한 지 사흘 후 마을의 면장을 만난 K.는 마을에서는 측량기사가 필요 없지만 학교의 사환으로 일하도록 주선해 주겠다는 말을 듣는다. 나흘 째 되는 날 K.는 술집에서 클람을 기다리다 소용이 없자 그에게 서면으로 만나자는 요청을 한다. 그리고 밤에는 학교에서 프리다와 함께 보낸다. 교사들과 논쟁을 벌인 다음 그는 두 조수를 해고시키고 바르나바스 집을 방문한다. 바르나바스의 누이인 올가는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녀의 동생인 아말리아가 성의 관리로부터 외설적인 제안을 받고 거절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프리다는 K.가 배척받는 집안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그와 헤어지고 술집으로 돌아간다.

성의 서기인 에어랑거에게 가려던 K.는 문을 잘못 알고 뷔르겔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이 사람은 그가 채용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에 K.는 극심한 피곤으로 말미암아 기회를 놓치고 만다. 에어랑거는 잠이 든 K.를 깨우고 클람을 생각해서 프리다를 놓아주라고 명령한다. 다음날 아침 K.는 하인들이 담당관리들에게 서류를 분배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목격한다. K.는 다음날까지 오랫동안 잠을 자고 하녀 페피는 자기 방에서 K.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 여기서 이 소설은 중단된다.

작품은 여기서 미완으로 끝나지만 카프카가 죽기 전에 대화를 통해 그의 작품 구상을 전해들은 브로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결말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즉, 주인공 K.가 기력이 다하여 죽어갈 때, 성 당국으로부터 "마을에 거주하겠다는 K.의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지만 사정을 참작하여 그곳에 살면서 일하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 전달되고, K.는 이 통지를 받은 다음 죽는다는 것이다.

작품 전체를 통해 일관되는 흐름은 성의 신비스럽고 어두운 정체이다. K.가 아무리 백방으로 그곳에 도달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번번이 허사로 끝날 뿐이다. 이 같은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성은 과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K.의 시야에 전개되는 성과 마을의 모습은 마치 그와의 사이에 놓인 다리를 경계로 현실세계와 비현실의 세계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마을은 눈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성조차도 어두움과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 때문에 커다란 성이 있음을 알려 주는 엷은 빛의 등불조차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K.는 한참동안 대로에서 마을로 통하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희뿌연 허공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상은 그대로 현실화되어 나무다리를 통과해 건너간 마을에서 성의 정체를 밝히려고 K.의 노력은 끝내 좌절되고 만다. 또한 동시에 성은 마을에서 움직이는 K.의 움직임이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통제할 정도의 차가운 객관적 현실로 그를 짓누르기도 한다. 『소송』에서 일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요제프 K.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재판소처럼 성은 K.의 세계에서 도달 불가능한 초현실적 영역인 동시에 객관적인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작품 서두에는 작가적인 배경과 관련해 성이 상징하는 바를 암시해 주는 듯한 묘사가 나온다. K.는 도착 이튿날 성을 관찰하는데 그것의 중심부에 있는 첨탑 둘레의 흉벽은 다음가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발코니 모양으로 생긴 의 끝에는 톱니처럼 날카로운 흉벽이 달려 있어서 이것이 겁을 먹거나 또는 버릇없는 어린애 손으로 그려진 것 같이 불확실하고도 불규칙적으로 부서지듯이 맑은 하늘에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법의 제재에 의하여 집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떨어져 잇는 방에 갇혀서 우울해 하는 거주자가 자기의 몸을 밝은 세상에 내놓기 위하여 지붕을 뚫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모습과도 같았다.

첨탑 주위의 '겁을 먹은' 어린애라는 표현이나 '우울해 하는 거주자', '구석진 방의 거주자' 등의 의인화는 카프카와 아버지의 관계를 상기시켜 준다. 모든 것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관료의 세계라고 할 성은 확실히 헤르만 카프카의 권위적인 이미지와 유사하다. 심지어 벤야민 같은 사람은 성이 아버지의 형상일 뿐 아니라 부패한 아버지 세계의 상징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개인적인 체험의 형상화가 아니다. 카프카에게 있어 부자갈등의 모티프는 세계의 원칙으로 화해 거대한 부권지배의 체계나 불합리한 권력기구에 대한 체험으로 확장되는 특성을 갖는다. 비록 개인적 모델을 형상화한 것이지만 이것이 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인을 지배하는 권력 메카니즘의 본질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소설은 개인적 갈등을 초월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후세대의 인류에게 세계의 숨겨진 모습을 체험하는 감동을 주는 것이다.

성은 K.와 마을 주민들에게 내외적으로 종속시켜 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전체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성주인인 백작의 허락 없이는 마을에 머물 수도 없고, 모든 것은 서의 소유이며 일상의 삶을 지배하면서도 일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바르나바스 가족의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관리의 추악한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주받은 삶을 묵묵히 따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성은 부패성과 동시에 불투명한 속성으로 K.를 압도한다. 마을에서 성으로 가는 길은 성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 형태로 K.를 지치게 한다. 마을에서도 성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성의 특성은 고관인 클람을 통해 가장 명시적으로 노출된다. 그는 천변만화하는 프로테우스적 존재라고 엠리히도 지적했지만 마을에 올 때와 갈 때가 다르고 맥주를 마시기 전과 마시고 난 후가 다르며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가, 혼자 있을 때와 대화중일 때가 다른 변화무쌍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올가는 말한다. K.는 클람의 전 애인인 프리다와 정사를 벌이는데 클람의 세력은 공사에 구분이 없어서 K.의 침실에까지 그의 세력을 미치는 초월적인 존재로 드러난다. 마을사람들과도 면담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술집 여주인의 말은 그와의 면담을 원하는 K.의 의지를 좌절시키기에 족한 것이다. 클람의 존재는 K.에게 불운의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일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바르나바스를 통해 편지를 보냄으로써 늘 K.를 감시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클람의 정체는 술집 여주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K.와는 불가분의 숙명적 관계임이 드러난다.

클람이 없었더라면 당신이 불행해지는 일도 없었으며 일이 도통 손에 잡히지 않아서 우두커니 서 있지 않아도 됐고 (……) 또한 클람이 없었더라면 당신은 인생에 관해서 전혀 무관심하지 않았을 거에요. (……) 이 모든 것을 보아도 충분히 클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 당신은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 또한 모든 것을 무시하더라도 클람은 당신의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불행해지는 일"이란 말을 술집 여주인의 견해로서 이 같은 그녀의 주장은 클람의 애인 프리다와 결혼하려는 K.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성 당국과 접촉하려는 최대의 목표 앞에서 여자에게 관심을 돌리는 K.의 행위에서는 에로스적 욕망 속에서 자기파괴를 실현하는 카프카 인물들의 특성이 반복되고 있다. 동시에 프리다를 이용해 성에 접근하려는 의도를 보임으로써 애정과는 무관하게 여자를 물화시키는 자세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투명하면서도 일체의 삶을 지배하는 성의 모습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은 클람의 분위기를 통해 전달된다.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은 K.에게도 적용되는 특징이다. 그는 성을 자신이 도달해야 하는 영역으로 인식하면서도 나는 투쟁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말함으로써 성을 투쟁 대상인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성』의 전편을 통해 성과 접촉하여 측량사로서 채용되려는 끈질긴 의지를 보이는 동시에 그는 이미 3장에서 프리다를 안 직후 그녀에게 "클람을 버리고 내 애인이 되어주시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몰려오는 적 앞에 노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여자는 적과의 투쟁을 위한 선전포고의 기능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권력자 클람으로부터 프리다를 탈취함으로써 에로스를 투쟁의 방편으로 누리는 것이다. 한편으로 K.의 투쟁이 지닌 이중성은 성에 도달하려는 열망 외에 성에 종속되지 않고 항상 자유인으로 있기를 원하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성』의 몽상적인 흐름을 본 독자가 느끼는 의문은 도대체 성은 실체로 존재하는 대상인가, K.는 정말 측량기사로 초대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성의 정체는 K.가 접하는 여러가지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호한 본질을 보여준다. K. 자신의 체험이나 그 체험에 대한 해석, 다른 쪽의 정보나 이에 대한 해석이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 일례로 클람으로부터 받은 편지는 면장에 의해 당신이 채용되었다는 것은 당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됨으로써 그 가치가 의문시되고, 이런 견해는 다시 술집 여주인에 의해 무시된다. 더구나 K.는 뭐든지 오해하는 버릇을 지닌 인물임으로 그의 시각으로 독자에게 비쳐지는 성의 모습은 확실하지 않다. K.가 측량기사로 초대되었다는 증거도 그 자신의 주장 외에는 분명하지 않다.

과거부터 같이 일하던 그의 조수들이 클람으로부터 파견된 것이 틀림없다는 프리다의 주장에 K.가 반박하지 못하는 것도 서에 대한 K.의 이중적인 태도와 더불어 성의 초월적인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텍스트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정황들을 볼 때 성은 K.의 자의식의 반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부친 콤플렉스에서 각인된 작가의 동경과 불안의 산물로 여겨진다. 동시에 성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형상화한 것으로 보여진다. 성에 대한 K.의 투쟁이 개인의 소외를 강요하는 외부세계에서 자유로운 존재의 가능성 여부를 진단한 것이라면 성의 기형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 비밀을 찾는 K.의 시도도 좌절된다는 작품구조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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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Der Prozeß, 1915)

카프카는 펠리체와 파혼하고 난 직후에 『소송 Der Prozeß』의 집필을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그의 사후인 1925년에 가서 막스 브로트에 의해 발표된 장편이다.

은행지배인 유제프 K.는 30회 생일날 아침 무슨 죄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체포당한다. 체포는 되었지만 일상생활은 계속 이어가는 형태였다. 그는 체포 시에 방이 어지렵혀진 것을 옆방의 뷔르스트너 양에게 사과하며 공격적인 애무를 한다. 그러나 법정에 출두하라는 통지를 받고 법정에 가서는 자신을 보호하며 법정을 마음껏 야유한다. 법정은 온갖 불투명한 것 투성이어서 몇 시에 오라는 것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막상 찾아가 보아도 어둡고 답답한 것이 마치 미로와 같다. 그는 체포당국과 접촉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실패하고 만다. 또한 소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법정에 관계되는 여인들, 법정소속 화가, 변호사, 교도신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31회 생일 전날밤에 찾아온 처형관들에게 채석장으로 끌려가 아무런 절차도 없이 살해당한다.

이 작품에서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요제프 K.는 유죄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죄를 부인한다. 오히려 법정에 가서는 "죄는 이 조직과 고관들에게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죄를 부인하면 할 수록 그는 죄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시인하는 길만이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암시가 제시된다. 즉 부인유죄, 시인무죄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셈이다. 여기서 법정세계의 인물들 중 누구에 의해서도 유죄의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오직 주인공 자신의 법에 대한 '무지'와 '죄의 부인'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그가 유죄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는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 동정하던 감시인들을 '개'라고 칭하며, 어머니를 벌써 몇 년째 찾아보지도 않았고, 직장으로 찾아온 사촌 여동생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송을 위해 뇌물로 매수를 하려는 의도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의식 속의 행동과는 달리 무의식적인 반응에서는 죄를 부인하지 못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는 아는 검사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기피하고, 검사와의 요트놀이도 거절하며, 마지막 장에서 처형관들이 방문할 때는 미리 예고도 없었는 데도 기다린 듯이 검은 예복을 입고 대기하는 형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은 일기에서 『실종자』의 카를 로스만을 '무죄인'이라고 표현한 데 비해 요제프 K.는 '유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작품이 펠리체와의 약혼 직후 쓰여졌고 카프카가 파혼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요제프 K.가 31회 생일 전날 파혼을 결심하며 파혼이 이루어진 베를린의 호텔방을 '법정'이라고까지 표현한 바 있다. 요컨대 순수세계를 지키기 위해 결혼을 포기했지만 이것은 동시에 외부세계에 대한, 즉 소속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죄의식을 낳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 자신이 언급하는 요제프 K.의 '유죄', 작품 내에서 거론되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죄가 자아의 분열에 의한 내면의 반영에 기인한다고 할 때, 관심은 그를 체포하고 처형하는 법정의 정체로 향하게 된다. 우선 법정은 정체가 불투명하고, 확인되는 면모는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K.를 감시하는 감시인들은 그의 밥을 먹어치우고 내의를 훔쳤다는 이유로 태형을 당하며, K.가 확인한 법전은 포르노 사진첩으로 밝혀진다. 또 피고인 K.자신의 집무실보다 훨씬 초라한 판사의 방은 어두컴컴한 지붕 밑의 다락방에 위치해 있고, 변화사의 방은 이보다 더 비참해서 바다그이 구멍으로 사람의 발이 빠지면 아래층의 천정으로 그 발이 보일 정도이다. 카프카가 이 작품을 쓴 후에 친구들 앞에서 1장을 낭독했을 때,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으며 카프카 자신도 너무 웃어서 낭독을 계속하지 못할 정도였다는 브로트의 증언을 보면 『소송』에서의 희극성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다만 문제는 이 희극성이 웃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카프카에게서의 희극성은 '검은 유머'라는 지적대로 갑자기 웃음을 정지시키고 싸늘한 침묵이나 잔인한 공포를 유발하는데, 법정세계 역시 우스꽝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시종 숨막힐 정도로 피고를 조여 오는 잔인한 본질을 노출한다. 피고에게 재판시기나 장소도 알려 주지 않는 불친절 외에도 현기증을 안겨 주며, 결정적인 권한이 있는 최고 재판소는 일체의 접근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이런 법정에서 피고가 느끼는 것은 '배멀리'와 도저히 빠져 나갈 길이 없다는 축구부재의 확인이다.

그러므로 '검은 유머'는 웃음이 아니라 웃음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앞에서 『변신 Die Verwandlung』에서 지배인이 도망치는 꼴은 우습고 권력층이라는 점에서 후련하기까지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그레고르와 그의 수입에 의존하는 가족의 미래가 암담해지는 것처럼 법정의 특성 하나하나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끔찍한 속성을 보여준다. "카프카에서의 유머는 웃어야 할 지 진지하게 있어야 할 지 모르게 한다"는 엠리히(Wihelm Emrich)의 주장대로 법정의 모습은 끔찍하다는 점에서 희극성이 부인된다. 그렇다고 비극적인 것도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외관에서 비극성이 부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K.를 체포하는 법정당국의 정체는 불투명한 가운데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이며 여러가지 면에서 죄를 다룰 자격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외관을 지니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권력과 잔인함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접근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피고와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K.가 아무리 시도를 해봐도 대화는 커뮤티케이션이 아니라 그것의 단절에 기여할 뿐이다.

출구부재의 환경은 법정뿐만 아니라 K.자신의 내면에서도 기인하고 있다. 그는 우선 자신을 체포한 당국과 투쟁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당국에 도움을 받으려고 함으로써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의식적으로는 무죄라고 주장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죄인처럼 행동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정황에서 그의 윤리상의 죄가 드러나는 사실을 볼 때, 정상을 벗어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법정 역시 실제의 법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이 사회 속에 투영된, 자신의 생존방식을 보는 K.의 자의식의 반영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출구부재의 환경은 법정이 지닌 냉혹함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에서도 불기피한 일면이 있는 것이다.

윤리적 죄는 K.의 퍼스낼리티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카프카는 아포리즘에서 인간의 으뜸가는 죄를 '성급함'과 '태만'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K.가 법정과 투쟁하면서 보여주는 모습에서는 부단히 성급한 태도와 태만한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법정을 자기 추측대로 찾아가는 것이나 변호사와 해약, 소송이 진행되는데도 여자들에게 관심을 돌리는 것, 은행장 대리와의 관계, 상인 블로크를 대하는 태도, 모친에 대한 냉담 등 그의 모든 관행은 카프카 자신이 말한 으뜸가는 죄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사회에 보여준 성급함은 바로 그 사회에 의해 모든 재판절차가 무시된 채 그를 처형하는 성급함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본 작품의 해석을 둘러싼 핵심은 여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우선 그는 시종일관 여자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데, 카프카의 모든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진정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충동적이다. 물론 창녀의 속성을 지닌 여자들 쪽에서 유혹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의 성애는 공격적이며 독신자답게 결혼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자들로부터 성적충동을 받고 벌이는 성애 외에 그가 여자들에게서 필요로 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소송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것들이다. 뷔르스터너양이나 레니와의 관계도 그녀들이 소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설 때는 주저 없이 버리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K.의 성애는 애정과는 유리된 탈인간화의 것이고, 여자를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서 물화시키는 속성이라고 할 것이다. 예컨대 법정사환의 부인을 빼앗겼을 때는 법정과의 투쟁에서 맞이한 '최초의 명백한 패배'로 인식하는 데서 이런 자취는 발견된다.

K.의 성애에는 육체의 소멸을 암시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령 엠리히는 뷔르스트너양의 '식도'에 키스한 K.가 식도를 잡힌 채 칼을 맞는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는데, 다음은 K.가 1장에서 뷔르스트너양과 연출하는 성애장면과 10장에서 처형되는 장면이다.

"알았어요, 가요"하고 K.는 말하더니 뒤따라가서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그녀의 입과 얼굴에다 마구 키스를 했다. 그것은 마치 목마른 짐승이 마침내 발견한 샘물에 혀를 빼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식도 부위의 목에다 키스를 하고 오랫동안 입술을 대고 있었다.

그러나 한 남자의 손이 K.의 식도를 누르는 동안 다른 사람은 그의 가슴 깊숙이 칼을 꽂고 두 번 회전시켰다.

식도에 키스를 한 K.의 식도가 집행관의 손에 눌리는 체스쳐를 통해 이미 K.의 성애는 죽음과 소송에서의 파멸을 예고해 준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성애와 죽음의 혼합은 삶을 향유하려는 성욕과 이 외부적 삶의 형태에 대한 반대성향, 즉 죽음의 욕망, 두 방향에 대한 분리된 자아의 흔들림이라고 여겨진다. 환언하면 이것은 에로스로 표현되는 외부사회 지향의 자아와 타나토스를 지향하는 순수세계의 자아로 분열된 나머지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두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다 좌절하는 카프카적 양가치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K.는 또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양방향을 쫓다 하나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뷔르스트너양과 만나고 온 뒤 '만족했지만 좀더 만족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법정사환의 부인과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그녀를 빼앗기로 만다. 삶과 죽음의 양방향의 자아를 쫓는 K.는 죽음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다. 우선 체포된 직후 갑자기 그는 자살 가능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며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는 집행관들을 끌다시피 하고, 심지어 처형 직전에도 자살의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다음 장면은 생과 사의 앰비벨런스를 가장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K.는 자기 머리 위에서 칼이 오고갈 때 그것을 빼앗아 들고 자기 가슴을 찔러 버리는 것이 자기 의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K.는 그런 짓은 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목을 돌리며 주위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확인되 듯이 자신의 의무라고 느끼는 자살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 의식 속의 의도는 발동되지 못하고 무의식적인 행위가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자살이 의무라는 의식 속의 자각은 죽음 직전까지 '자유스럽게 목을 돌려 주위를 살피는' 무의식적인 삶의 애착으로 분열되어 나타난다. 죽음 역시 동경의 대상이지만 성취되지는 못한다. 죽음은 K.의 내면세계에서 소망되지만 동시에 처형될 때까지 자아에 의해 끝까지 수용되지 않는 양면성을 지니는 것이다. 소송의 전과정을 통해 죽음과 더 친숙한 태도를 취하지만, 죽음으로써 추구부재의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은 보여주지 못한다. 소송에서 K.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를 유일한 길은 화가 티토렐리의 제안에서 감지된다. 그는 소송문제를 조언해 주는데 있어 가장 사실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어 열쇠가 되는 핵심적 인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가 K.에게 열거하는 방법은 진정한 무제선고, 형식상의 무죄선고, 그리고 지연작전 세 가지가 있는데, 진정한 무죄선고는 일단 배제된다. 이것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최고재판소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형식상의 무죄선고는 별다른 수고가 필요없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일시적인 무죄선고일 뿐이다. 즉 무죄가 되면 다시 체포되고, 다시 무죄가 되고 또 체포되고 하는 식으로 끝없는 악순환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끝없이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려 올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지프스의 형상을 닮고 고달프고 긴장된 방법이지만 악순환이 계속되는 동안 삶은 이어지는 결정적 장점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요제프 K.에게 주어진 유일한 출구하고 보여진다.

지연작전은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고 늘 긴장 속에서 피곤하게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앞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최종적인 유죄선고를 막아주지만 동시에 진정한 무죄선고도 저지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할 것이다. 이 두가지 가능성으로 살아가는 방식은 은행지배인으로서의 K.가 몸담고 살아가는 자본주의 경쟁적인 생존형태로서 자유를 포기한 종속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 K.는 티톨렐리가 제시한 방법을 진정한 무죄선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그러나 진정한 무죄선고가 불가능하듯이, 이런 형태 외의 존재방식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긴장되고 피곤하며 종속적이지만 삶을 지탱해 주는 가능한 생존방식과 타협을 거부하고 불가능한 방법을 고집하다 좌절한다는 점에서 그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소송』의 전체적인 구조는 고유한 '존재'를 지향하는 순수자아와 '소속'을 지향하는 사회적 존재의 갈등을 다루는 카프카의 문학적 명제를 예시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법을 필요로 하면서 그 법 때문에 파멸하는 『법 앞에서 』의 시골사람 같이 요제프 K.는 소송으로 뒤덮인 세계 속에 살고자 하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그 세계에 의해 처형된다. 다시말해 그는 이 세계와 더불어 생존할 수도, 이 세계를 떠나서 생존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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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Ein Landarzt, 1917)

밤의 종소리를 듣고 나이 든 시골의사는 중환자에게 불려간다. 그곳까지 가기 위해 그는 마차를 끌 새 말 한 마리가 필요한데 그것은 그의 말이 과로로 인해 죽었기 때문이다. 하녀는 동네사람들에게 말을 빌리려고 하지만 눈보라가 치는 밤에 말을 빌려 줄 사람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돼지우리에서 튼튼한 말 두 마리가 나타난다. 이어 낯선 마부가 말을 마차에 메고는 마차를 출발시킨다. 의사는 짐승 같은 마부에게 하녀 로자를 맡기는 것이 싫어서 가기를 거절하지만 이미 마차는 환자의 집에 도착해 있다.

처음에 보니 환자는 전혀 아픈 게 아니다. 그러나 말들이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을 때 다시 확인하니 환자인 소년의 엉덩이에는 치료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가 나 있다. 환자의 집에서도 의사는 로자에 대한 격정을 멈출 수가 없다. 이번에는 의사 자신이 환자가 되어 소년의 옆에 눕혀진다. 소년의 부모와 누이가 이 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 합창대의 이상한 노래가 들려 온다. 소년은 의사의 무능을 비난한다. 주변 상황이 위협적으로 변함에 따라 의사는 옷을 제대로 걸치지도 못한 채 서둘러 마차에 오른다. 그러나 말들이 올 때와는 달리 천천히 마차를 끄는 가운데 합창대의 노랫소리가 뒤를 따른다.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눈 내리는 한밤의 벌판에서 헤맨다.

이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기적인 배경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우선 일인칭 화자로 나오는 시골의사는 트리쉬에서 실제로 시골의사로 있었던 카프카의 외삼촌 지그프리트 뢰비의 특징을 지녔다는 점이다. 앞에서 간단히 소개된 대로 그는 카프카가 가장 따르는 삼촌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쓰여진 1917년에는 펠리체와의 두 번째 약혼이 있었고, 8월에는 결핵으로 인한 최초의 각혈이 있었다. 12월에 들어서 카프카는 재차 파혼을 하게 된다.

시골의사에게는 대치된 두 영역이 존재한다. 하나는 하녀 로자와 독신자로 살아가는 의사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눈보라가 치는 먼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환자의 집이다. 여기서 밤에 그를 호출하는 종소리는 작가인 카프카 본래의 자아인 작가적 존재로부터의 부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고 카프카는 문학에서 자신의 본래 사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술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 사이의 갈등이라는 중심 테마가 여전히 카프카를 괴롭히던 이 무렵은 결혼에 대한 갈등이 각혈로 인해 한층 더 심화된 시기이고, 이런 정신적 배경이 시골의사가 움직이는 공간에 투영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독신자로 하녀와 살아가는 공간은 소외된 영역이다. 의사는 아무에게서도 말을 빌릴 수 없는 동네에서 고립된 채 하녀인 로자의 소중함도 모르며 살아왔다. 그런데 로자에 대한 인식은 짐승 같은 마부가 등장함으로써 새롭게 그를 괴롭힌다. 환자에게 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면전에서 하녀를 덥석 끌어안고 얼굴을 갖다 대는 마부 때문에 그는 출발을 포기하려고 한다. 거기에 가는 대가로서 하녀를 헐값에 넘겨주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자와 자기의 문학적 존재의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약혼을 포기하지 못하는 작가의식과 동일하다. 약혼자와의 결합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면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듯이 작품 끝까지 의사는 로자에 대한 걱정을 금하지 못한다.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대가는 관능적 삶의 포기이지만, 평생 여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와 마찬가지로 의사는 로자에게 집착하다가 두 영역의 중간지대에서 실종되고 마는 것이다. 로자가 마부를 피해 문을 모조리 걸어 잠그고 실내로 숨은 뒤 환자의 집으로 향하는 그 순간에 의사의 귀에 들리는 것은 마부의 습격으로 산산히 부서지는 문소리이다. 자신의 본분을 찾으러 가는 그 순간에도 에로스적인 삶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그를 환자의 집으로 데려다 주는 말들은 비지상적인 것들이다. 그 자신의 말이 죽은 것은 문학적 영감이 죽었다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미지의 영감의 힘이 등장하여 그를 본래의 자아와 만나게 해준다. 따라서 환자는 의사와 동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녀와 살아온 의사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껍데기 자아라면 환자는 본래의 자아이다. 이것은 그가 환자 곁에 누운 뒤 들리는 목소리를 통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알겠느냐?" 나의 귓속에다 대고 소곤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나는 너를 별로 믿지 않는다. 너도 또한 네 발로 온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엔가 내던져졌을 뿐이다. 도와주는 대신에 너는 나의 죽음의 자리를 좁게만 해주고 있다."

이것은 분열된 두 자아의 관계에서 이해할 때 자아 내면의 독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본래의 자아로 귀환한 뒤에도 자신을 하녀를 약탈당한 의사로 규정하는 등, 끊임없이 로자를 돌아보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순수자아인 환자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는 핀잔을 듣는다고 볼 수 있다. 환자와 로자는 상호대치된 영역의 상징들이다. 작가적 부름이라 할 환자치료 때문에 로자와의 관계가 방해받는다면 순수자아인 환자는 로자에 대한 의사의 집착 때문에 방해받는다. 환자의 상처가 장미빛이라는 것은 로자로 대표되는 에로스적 삶이 작가적 존재를 방해한다는 의식이 투영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카프카의 발병이 약혼을 종국적으로 포기하게 하듯이 의사는 환자의 병 때문에 로자와 궁극적으로 이별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로자를 계속 돌아보게 되는 것은 환자의 흔들리는 태도에도 기인한다. 소년은 "죽게 내버려 둬라"고 하다가 다시 "살려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의사의 눈에도 환자는 건강한 것으로 보였다가 다시 커다란 상처가 발견되기도 한다. 작가적 삶과 지상적 존재의 사이에서 여자문제가 카프카를 시종 괴롭혔듯이 환자의 상처에 대한 판단도 계속 흔들린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제 로자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소년이 죽고 싶다고 한 말은 옳고 타당했다. 나 역시 죽고 싶다. 끝없는 겨울, 여기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내 말은 죽어 버렸고 마을에서는 말을 빌려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나의 밤의 종소리의 도움을 빌어 온 지방이 나를 괴롭혀 왔는데, 이제는 로자조차 희생시켜야 했다. 여러 해 동안 내게서 주의조차 듣지 않은 그 처녀, 나의 집에서 살아온 그 아름다운 처녀를 - 이 희생은 너무 크다. (……) 최선의 의지로서도 로자를 나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 가족들 …….

로자에 대한 걱정은 본래의 영역에서 다시 사회적 삶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영역의 대표자인 의사와 환자는 갈등의 구조에서 너무 지쳐 둘 다 죽고 싶어한다. 또한 환자의 상처는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로서의 그는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 그러니 '무엇을 한단 말인가?'라는 자문이 생기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본문을 찾아왔지만 그로서도 치료는 불가능했고 대신 로자만 마부에게 빼앗겼다. 그것은 '너무 큰' 희생이다. 두 세계의 틈바구니에서 흔들린 결과는 어느 곳에도 소속하지 못하고 한겨울의 무주공간에서 떠도는 운명으로 결말지어진다.

의사를 각성시켜 주는 계기는 자신의 것이 아닌 미지의 것들이다. 가령 "그 자의 옷을 벗기라, 그러면 나으리니, 그래도 낫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고 노래하는 합창대와 비지상적인 말들이다. 이것들을 통해 자신의 본래영역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의술도 잃었고 로자도 잃어버린 운명만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집에 갈 수 없다. 꽃 피어나는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 버렸다. (……) 발가숭이로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에 몸을 내맡겼다.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의 말을 몰아 이 늙은 사나이 나는 빙빙 돌고 있다. (……)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밤 종소리가 울린 것을 따르다니. 다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이라는 표현은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일깨워 주는 분위기를 담고 있다. 본분으로서의 의사의 옷을 벗긴 그는 벌거벗은 채 의사 역할도 끝난 늙은이로서 빙빙 도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어느 세계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그는 두 세계의 중간지대를 빙빙 돌며 한겨울의 혹한을 견뎌야 하는 운명에 빠진 것이다. 작가적 세계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그것 때문에 일상의 삶을 포기했지만 스스로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결정은 늙은이로서는 그대로 종국적인 성격을 갖기에 돌이킬 수 없다는 인식이 그를 덮치는 것이다. 결국 두 개의 자아에 대한 양방향의 집착은 동일성을 상실하는 불행한 시대를 인식시켜 주고 그 결과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혹한의 추위를 안겨준 채 무주공간에서 떨게 하는 비극적 운명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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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 1914)

어느 탐험 여행가가 유형지를 방문했다. 여기서 근무하는 장교는 자신이 긍지를 갖고 능숙하게 다루는 처형기계로 어느 죄수의 처형을 보여주려고 한다. 재판관이면서 동시에 처형관인 그는 이 과정을 통해서 기계의 우수하고 완벽한 성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죄수는 야간보초 중 잠이 든 것과 상관에게 들켰는데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죄목이었다. 기계를 다루는 장교는 어떤 범죄건 확실하기 때문에 조사나 심문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죄수로 끌려온 사병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처형기계는 죄수의 몸에 그가 위반한 죄목을 바늘로 기록하고 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12시간이 지나면 죄수는 죽어서 구덩이로 던져지게 되어 있다. 이런 처형제도는 전임 사령관이 애착을 갖고 실시하던 것인데, 그가 죽고 신임사령관이 부임한 이후에는 논란거리여서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 제도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탐험가는 거절한다. 탐험가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장교는 죄수를 석방하고 자신이 직접 기계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그런데 기계는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않는다. 장교는 고문하는 대신 죽여 버리는 것이다.

이 단편의 주제는 비인간적인 권력제도가 갖는 정의의 극단적인 왜곡으로 보인다. 권력 자신의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거나 사이비 종교적인 광신적 수단에 의존하는 맹종성, 맹목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치국가의 모든 사법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입법, 사법, 집행 등 모든 것이 기계를 담당하는 장교의 한 손아귀에 들어 있다. 또한 피고의 죄는 처음부터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장교가 말하듯 '어떤 범되건 의심할 여지없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의 처형은 이미 범죄 자체와는 무관하다. 장교가 내리는 판결은 완전무결하고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죽은 전임사령관을 광신적으로 숭배하는 장교는 한계를 모르는 권력에 종속되어 왜곡된 정의의 이념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그의 맹종은 스스로 처형기계에 누워 희생될 만큼 광적인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판결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할 기계는 예기치 못한 불완전한 작동을 보여준다. 법제도의 충실한 수호자이며 신봉자인 장교가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제도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믿음이 미혹이고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는다. 『소송 Der Prozeß』의 요제프 K.와 장교는 법에 대한 전도된 관계를 보여주는 일면이 있다. 즉 K.가 법에 의해 '무지한' 결과로 죽는 데 비해 장교는 법을 신봉하면서 수호하는 법의 종사자로 희생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법 앞에서』의 시골사람이 좀더 확실한 대비가 되고 있다. 그가 법을 구경하기 위해, 법의 내부를 보기 위해 평생 기다리다 죽는다면, 장교는 평생 법을 지키고 법대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왜곡된 정의가 스스로 지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기미망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 법의 정신을 오해하여 정의의 왜곡된 제도에 맹종하다가 그 제도 자체가 허물어지는 의미인 것이다. 장교가 상징하는 왜곡된 정의는 무의미하고 허망한 종말을 통해 그 실체를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그의 '살아 있을 때 그대로의' 죽은 모습은 그처럼 그가 확언하던 구원의 징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문학적 자기처단의 기록으로 보는 브로트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장교의 죽음은 외부세계에 종속되어 집착한 카프카의 자기처단이라는 형상으로 비유된다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이 복종하는 제도를 따르다가 그 제도에 의해 파멸하는 장교는 이부세계를 지향하는 자아의 절망적인 최후를 암시해 준다. 그가 구원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 표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탐험가의 역할은 예술을 지향하는 자아의 한 변형으로 보여진다. 예술가가 과학자의 얼굴로 등장했다는 한 가지 가정을 해보면, 이 사람이 유형지의 비인간성과 잘못된 법제도에 반대하면서도 간여하지 않는 태도에서 우리는 유형지처럼 소외와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외부사회로 향하려는 자아를 적극 제지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느낄 수 있다.

탐험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떤 낯선 사정에 결정적인 간섭을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탐험가는 이 유형지의 주민도, 유형지를 통치하는 국가의 국민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사형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하거나 그걸 방해하려고 한다면 너는 외국인이니 까 잠자코 있으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거기에 더 이상 답변할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사건에 부딪칠 때마다 생각이 막혀 버렸다. 견문을 넓히려고 여행을 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의 재판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당치도 않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곳의 여러가지 사정은 역시 호기심을 끄는 것이었다. 재판수속이 부당하며 사형집행이 비인도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자신만의 주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죄수는 사실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이며, 동족도 아니거니와 동정할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서술시점의 기준이 되는 탐험가의 태도는 확실히 방관적이다. 재판수속이 부당하며 사형집행이 비인도적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유형지의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연의 진리와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는 탐험가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 장교의 확신이 옳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죽은 얼굴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지만, 탐험가는 유형지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제도에 대한 개혁의 의지를, 적어도 옳지 않다고 말할 과학자의 진실에 대한 용기마저도 결여한 채 서둘러 섬을 떠난다. 더구나 기계담당 사병과 풀려난 죄수가 함께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이들을 유형지에 두고 가버린다.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태도에서 장교와 탐험가는 대조적이다. 잘못된 믿음이지만 장교는 강한 추진력을 갖고 확고부동한 자세인 데 비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진할 용기를 탐험가는 갖고 있지 못하다. 끝까지 관찰자로 남을 뿐이다.

탐험가가 카프카의 예술적 자아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외부세계에 대한 강한 부정의 의지를 못 가진 방관자의 우유부단한 태도이다. 즉 어느 하나의 세계에 소속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양가치적 자아의 소산이라고 보여진다. 이 세계가 모순된 제도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에서의 정의가 왜곡되었으며 곳곳에서 비인간적인 잔인함이 드러나 있고 이런 잔인한 세계의 제도를 추종한 결과가 허무한 파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항할 엄두를 못 낼 뿐 아니라, 세계를 진실하게 개선할 예술가로서의 의무마저 포기하는 연약한 의지의 형상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이 작품이 살인기구의 기능을 통해 전쟁을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나치즘의 강제수용소를 예언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이것이 『소송』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예술과 삶이라는 분열적 위기를 한참 겪는 시점에 쓰여졌다는 배경을 생각하면 장교와 탐험가라는 대조적인 인물이 한 공간에서 연출되는 묘사를 볼 때, 내외 세계의 분열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가 보다 설득력 있어 보인다. 특히 법과 제도의 무거운 주제가 일단락된 뒤 탐험가가 유형지를 떠나기 전의 묘사가 일상의 진부한 찌꺼기들을 보여줌으로써, 카프카에게 되풀이하여 나타나듯이 최후의 승리는 외부사회의 삶이 차지한다는 결말구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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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 1917)

1917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단편은 E. T. A 호프만의 『개 베르간차의 최근 운명에 관한 보고』와 빌헬름 하우프의 『젊은 영국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극으로도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장기 흥행에 성공한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은 바로 이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변신』과는 반대로 여기서는 동물의 인간화가 다루어지고 있다.

인간화된 원숭이 빨간 피터는 학자들의 모임에서 요구한 바에 따라 원숭이로서의 전생(前生)과 자신의 인간화에 대해 강연을 한다. 그는 인습적인 아카데미의 정중한 어법을 노련하게 구사하며 대단한 능변으로 이 과제를 완주한다. 그는 자기도취로 가득 차 있고 힘겹게 도달한 신분에 대단한 긍지를 보인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여기서는 카프카와 주인공의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원숭이 빨간 피터는 교양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이고, 일종의 벼락 출세를 한 입장에서 과잉 적응을 한 시각으로 자신의 체험을 언급하기 때문에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요컨대 그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자기과거를 회고하면서 동물상태로 있을 때의 자유를 과대평가하는데 사실 그의 기억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사냥꾼들에게 포획되어 배에 실린 시점이다.

현재의 피터의 지위는 무대 위에서의 쇼 공연가인데 이것 역시 그에게 진정한 자유의 상태로 체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속에 갇힌 고통스러운 삶이 그에게 이런 상태를 '출구'로서 강요한 결과이다. 그가 포획되어 실려온 배는 그에게 '생애 처음으로 출구 없는' 상황을 안겨 주었고, 그는 '출구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원숭이로 남기를 포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출구'라는 것은 자기실현의 길이 아니라 강요된 적응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귀향』이나 『시골의사 Ein Landarzt』, 『성 Das Schloß』 등에 나타나듯, 카프카의 많은 주인공들이 부닥치는 잘못된 도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원숭이가 아니지만 진정한 인간도 아니다. 대용품으로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잡종일 뿐이다. 그것은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낮에는 쇼 무대에서 공연을 하지만 밤에는 침팬지와 동침함으로써 동물의 본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어설픈 인간화는 이 작품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조롱이라는 유력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동시에 문명이라는 애매한 표현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나 불안전성을 풍자한 것으로 볼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빨간 피터가 인간세계로 진입했다는 증거들은 대체로 외형적인 것들이다. 침뱉기라든가 악수, 소주 마시기 등의 인간적인 관습들은 그가 인간세계의 일원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화의 표피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즉 이것은 자기를 과시하는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간의 자유는 철봉곡예사의 운동의 자유로 야유되기도 한다. 즉 극히 좁은 공간에서의 단조로운 반복운동의 성격을 지닌 것이 으른바 인간의 자유가 지닌 한계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빨간 피터가 인간화 과정의 교육을 위해 많은 선생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인습을 풍자한 것으로 보여진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카프카의 작품에서는 드물게 작가와 주인공의 동일성이 집중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본서의 테마인 내외세계의 분열로 접근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연구된 해석 중 앞에서 언급되지 않은 몇 가지만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1. 정신분석학적인 연구에서는 술을 마신다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원숭이가 인간세계로 수용되는 것을 작가가 성인 남자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에 비유한다. 빨간 피터는 포획시에 총 두 방을 맞는데, 한 방은 음부 부위에 상처를 주고 이것은 카프카의 거세공포로 풀이된다. 우리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고통은 카프카의 성적궁핍으로 여겨진다. 카프카는 아동기 체험의 여파로 성적억압의 고통을 당한 바 있는데 원숭이가 완전한 인간이 못 되었다는 것은 정상적인 욕구 분출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2. 이 단편은 개종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려는 유대인의 동화 노력에 대한 풍자이다.

3. 인간과는 별개의 종(種)에 소속된 것처럼 보는 카프카 자신의 체험과 자신의 성향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묘사된 것이다.

4. 인간의 사회화를 풍자한 것이다. 성공적인 순화과정은 빨간 피터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공연예술가로 부상하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Posted by silberne
,

http://www.nobelmann.com/about/edu/edu.htm

2.

독일교육의 특징 독일의 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지는 ‘우수한 인력의 조기발견’과 ‘직업교육을 통한 경제 인력의 확보’에 토대를 두고 있다.
독일에서의 교육은 각 주에서 전적인 책임을 진다. 따라서 16개 주에는 각각 상이한 교육체계와 학교 유형들이 있다. 의무교육 및 편제 그리고 수료의 인정 등의 기본구조는 주 들 간의 협정에 따라 공통적이며, 각 주들은 서로 다른 교육 정책을 조정하기 위해 ‘문교부상설회의’를 만들어서 공동 노력을 하고 있다.
독일은 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만 6세부터 시작하여 12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주의 학교 교육은 무료로 실시되기 때문에 12년 동안은 교육을 받는데 드는 돈은 없다.
독일 교육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들이 진로를 조기에 결정한다는 점이다. 초등교육은 대개 4년제로 만 6세부터 시작되며 졸업 후 인문계 중등학교인 “김나지움”과 실업계 학교인 “레알슐레” 레알슐레보다 성적이 더 낮은 학생들이 가는 실업계 학교 “하우프트 슐레‘로 나뉘어 진학한다.
독일에는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기회가 있다. 일반 교육제도와 직업 교육제도의 요소들이 상호 전환이 가능할 뿐 아니라, 초등학교 이후 오리엔테이션 과정(10세에서 12세 사이, 즉 5-6학년)을 밟거나 마친 후라도 과정을 옮길 수 있으며, 일찍 취업한 젊은이들에게 학교 졸업장을 따거나 나아가 대학학위를 목표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언제나 열려있다.


학령 전 교육 - Kindergarten

취학 전 단계로서 유치원은 독일 교육의 전통이다.
유치원 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부모의 의사에 달려 있으며, 놀이 중심의 사회성 함양을 목표로 하며, 공. 사립을 막론하고 유상교육을 실시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오전에만 유치원에서 지내는데,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보낼 수 있는 종일제 유치원도 있으며, 병설기관으로 탁아소도 운영하고 있다.


초등교육 - Grundschule


의무교육기간이며, 일반적으로 6에서 9세까지 4년간의 교육과정이지만 브레멘, 베를린, 함부르크에서는 6년간으로 되어 있다.
의무 교육 단계로서 당해연도 6월 30일까지 만 6세가 되는 아동이 입학 대상이며, 능력에 따라 5-7세부터도 입학이 가능하며 신학기는 9월 1일에 시작된다.
많은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상황 파악 반(5학년과 6학년 과정)을 우선 선택하며, 이 과정을 통하여 학생과 부모는 학교 선택을 변경할 수 있다. (바이에른주 예외)


중등교육

중등교육은 의무교육기간이며 세 가지로 구분되어 지는데, 학문 연마 정도가 비교적 덜한 주요학교(Hauptschule), 보통학교인 실업학교(Realschule), 그리고 대학입학 수준까지 교육하는 일반 인문 교육학교 (Gymnasium)가 그것이다. 또한 몇몇 주정부에서 이들 세 가지를 함께 엮어서 종합학교(Gesamtschule)를 개설하고 있기도 하다. 각 단계별로 학교에 진학을 할 때에는 각 학생의 전 학년 성적과 능력에 따라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결정한다. 이 때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수평적 개념의 교과과정으로,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수직적인 등급이 주어지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a)하우프트 슐레 (Hauptschule)

5학년부터 9학년까지 5년제 학교로써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교로 졸업 후 직업생활에 기초가 되는 내용을 교육한다. 5-6학년은 관찰단계로써 이후 학생의 진로가 확정되므로 6학년 말에는 다른 형태의 중등학교 7학년으로 진학이 가능하나 이 수는 극히 적다. 9학년이나 10학년을 마치면 대부분 직업 훈련과정에 들어가며 이와 병행하여 18세까지 직업학교에 다닌다.

(b)레알슐레 (Realschule)


5학년부터 10학년까지의 6년제 학교로써 대학진학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보통교육과 함께 직업교육도 강조한다. 5-6학년의 관찰 기간 후에 다른 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이 가능하며 졸업 후에는 직업훈련 전문학교와 같은 기술학교에 입학하거나 김나지움의 상급과정으로의 진학자격이 부여된다.

(c)김나지움(Gymnasium)


5학년부터 13학년까지의 9년제의 독일의 전통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로 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준비 시킨다. 5-10학년은 중등 1단계, 11-13학년은 중등2단계로 구분되며, 김나지움을 이수한 학생은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 시험에 응시 할 수 있다.

(d)종합학교 (Gesamtschule)

5학년부터 10학년까지의 과정으로 위의 세 학교 형태들을 혼합한 학교이다. 종합학교의 특징은 조기선발을 지양하고, 모든 청소년들에게 동일한 학교에서 함께 배우게 하는 동시에 공통의 기초교양을 제공한다.

라. 고등 및 직업교육
독일의 대학은 모두 국립이며, 州에서 설립하고 대학의 확충, 설립 및 재정의 기본 틀은 연방과 州가 함께 정한다. 특별히 명문대학이라는 구분이 없어서 전공학과, 담당교수에 따라 대학을 선택한다.
독일 내에는 현재 모두 합해 약 300개 이상의 대학교가 있다. 이 중에서 약 90개 이상의 일반대학교(Universitaet)가 있고 공과대학(Technische Universitaet), 전문대학(Fachhochschule), 통합대학(Gesamthochschule), 예술대학(Musik- und Kunsthochschule), 교육대학(Paedagogische Hochschule)과 기타 사립대학, 대학교와 동등하게 인정되는 대학교들이 있다.
독일 대학에서는 졸업까지 8 학기 또는 12학기를 이수하여야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다음의 박사학위는 2년 내지는 5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독일에는 2년제 대학과 대학원이 없다. 전문대학의 경우 보통 4년제(8학기 이수)이며 간혹 3년제가 있다. 대학원은 독일 대학 교육 제도상 존재하지 않으며 학사, 석사과정이 합쳐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학부만 졸업하고 독일에서 유학하는 경우 대학교의 중간부터 시작하게 된다.
입학자격은 일반적으로 독일의 Abitur와 동등의 학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는 대학 예비 과정(Studienkolleg, 2학기간)을 거치면 된다. 그러나 예술계(미술, 음악 등) 전공자는 상기 학력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전공분야에 대한 전공실기로써 기초지식과 재능을 인정받으면 입학이 가능하다.
직업교육은 대부분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기업에서 실습 하는 '이중 시스템(Dual System)'으로 이루어지며 기업과 국가는 직업교육에 공동책임을 갖는다. 몇몇 다른 나라도 독일의 이중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직업 교육을 부분적으로 기업에 위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byun1748?Redirect=Log&logNo=100024044650

3.한국과 다른 점

독일 교육제도에 관한 기초적질문들(Bildungssystem von Deutschland)

1. 독일은 살부터 교육이 시작되나요?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3세에 유치원(Kindergarten) 또는 프리스쿨(Vorschule) 다니기 시작하고 6세가 되면 초등학교(Grundschule) 입학한다. 독일의 교육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교육이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 유치원에서 박사를 마칠 때까지 독일국민 뿐만 아니라 유학생 역시 일정의 행정비용을 제외하고는 거의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독일의 교육이 무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교육비는 모두 독일의 납세자들이 부담한다.

그러나 근자에는 특수 사립학교 영어나 기타 외국어로 이루어지는 국제대학원의 경우, 그리고 대학에 따라 학년별로 약간의 수업료를 받고 있거나 별로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학교로 문의)

2. 독일의 학제는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릅니까?


독일의 학제는 6세에 초등학교 (Grundschule) 입학하여 김나지움 (Gymnasium) 9, 13년을 공부한 졸업시험(Abitur) 보고 대학에 입학한다.
1997
개정된 독일대학 입학 규정에 의하면 한국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 총점에서 62% 이상을 득점한 경우, 아니면 대학 1년이나 전문대학을 2년이상 다닌 경우 독일 대학에 바로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계열을 바꾸는 경우(예를 들면 문과에서 이과계열 또는 공과대학으로 바꾸는 경우), 아니면 일정 이상의 수학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 대학의 지시에 의해 대학예비자 과정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 수능 성적이 62% 넘는 경우라도 대학이 요구하는 과목을 고등학교에서 이수하지 않은 경우 과정을 들어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대학이 지원자에 대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
과정을 듣는 것이 반드시 힘들고 어렵기만 것이 아니다. 수업료도 거의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어학증명시험(DSH) 준비할 있고 대학수업을 위해 필요한 기초과목들을 미리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성적이 부진했다면 과정을 듣고 대학에 입학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독일어 능력이 중급은 되어야 한다. (ZMP 증명
)
독일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일반 고등학교 (Gymnasium) 가지 않고 실업학교 (Realschule/4) 또는 종합학교 (Hauptschule/6) 진학하여 실업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일반 고등학교 (Gymnasium), 실업학교 (Realschule) 또는 종합학교 (Hauptschule) 과정 후에는 직업학교 (Berufsschule) 다니면서 미래의 직업을 준비하거나 대학교에 진학할 있으나, 대학 진학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졸업시험(Abitur) 학생들 외에는 이에 준하는 검정 단계를 거쳐야 가능하다.

3. 독일의 대학과정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요?


A.
인문/사회 계열의 경우
1)
그룬트슈투디움 (Grundstudium): 기초과정-한국에서의 학부과정에 해당( 3
)
2)
중간시험
(Zwischenpruefung)
3)
하우프트슈투디움 (Hauptstudium) :전공과정-한국에서의 석사과정에 해당( 2
)
졸업 --> 마기스터(Magister) , 우리나라의 석사에 해당하는 학위를 받음


B.
자연/공과 대학/경영학/교육학 등의 경우

1)
그룬트슈투디움 (Grundstudium): 기초과정-한국에서의 학부과정에 해당( 3
)
2)
중간시험
(Zwischenpruefung)
3)
하우프트슈투디움 (Hauptstudium) :전공과정-한국에서의 석사과정에 해당 ( 2
)
졸업 --> 디플롬 (Diplom) 획득.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석사학위에 해당


C.
사범대학, 의과대학, 법과대학의 경우

디플롬을 받을 있다. 졸업할 국가고시(Staatsexamen) 있다
.

이처럼 독일 대학과정에는 전통적으로 별도의 석사과정이 개설되어 있지 않고 대학을 마치면 석사학위에 해당하는 학위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인문 사회계열의 경우 바로 박사과정(Promotion) 들어갈 있다. 그러나 공과대학이나 자연과학의 경우 실험-팀이 함께 박사과정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교수와 반드시 미리 상의) 하지만 근래 독일에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그리고 미국의 MBA 과정과 비슷한 경영학 석사과정을 영어로 개설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여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DAAD홈페이지 International_Courses 참고하거나 대학에 개별적으로 문의). 또한 학부(BA) 석사(MA) 나누어 개설하는 추세를 띠고 있다. 본국에서 대학을 이미 졸업한 경우, 독일 대학과 상의하여 바로 석사과정에 입학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독일의 전통적인 방식인 학부와 석사를 연계하는 방식과(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경우) 석사과정에 바로 입학하는 방법 자신에게 알맞은 방식을 대학과 합의하여 결정할 있다.

4. 나의 유학을 위해 가장 적합한 대학을 어떻게 찾을 있나요?


독일에는 미국 또는 한국에 있는 대학간 서열(일류대학, 이류대학 같은 ) 비교할 있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비슷한 정도의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 따라서 독일 대학의 입학허가 조건들 역시 어디나 비슷하다. 그리고 원하는 경우 1-2 학기 대학을 옮겨 다니며 공부할 있다. 다시 말해 A라는 대학을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공부할 있다.(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이러한 학업 방식은 독일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따라서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관심에 의해 좌우된다. 자신에게 특히 관심이 있는 분야의 연구- 또는 학습의 중점에 따라, 또는 자신이 특히 배우거나 연구하고자 하는 대학교수를 선택하여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대학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공부하는 도시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종 소도시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우 학습조건들이 낫다. 왜냐하면 작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개인적인 친분을 쌓거나 보다 쉽게 사적인 접촉을 있기 때문이다. 뮌헨, 베를린 또는 함부르크 같이 대학 도시들은 그와는 반대로 보다 다양한 문학적인 삶을 제공하는 대신, 익명의 대학생활을 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생활비 부담을 많이 느끼게 한다.

5. 독일의 교육은 무료라는데, 누구든지 입학할 있나요?


독일은 거의 모든 학교가 공립 학교이다. 그러나 종교단체나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도 있다.공립학교는 국가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학부모의 부담이 거의 없지만 사립학교는 소정의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독일 어린이들은 공립 학교든 사립 학교든 부모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진학할 있다. 그러나 18 미만인 외국인의 경우, 부모가 독일에서 학업 중이거나 주재원과 같은 직업을 갖고 있을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이 인정되는 경우( 16) 제외하고 독일 내의 학교에 다닐 없다(독일어 문제가 가장 심각!!!). 부득이 하게 독일에서 학업을 해야 하는 경우, 독일에 거주하는 아주 가까운 후견인 또는 친척이 학생에 대해 법적, 경제적, 의료, 학문적 보호를 있다는 것을 독일정부와 대사관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조기 유학 보내고자 하시는 분은 연락하시라)그러나 대학생의 경우( 18 이상)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으면 혼자 유학할 있다.

6. 독일 대학입시는 어떤가요?


독일 학생들은 졸업시헙(Abitur) 성적에 따라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지원한다(복수지원 가능). 몇몇 학과 예를 들면 의과대학, 실험을 요하는 공대의 학과는 인원제한 (Numerus Clausus) 있어서 성적이 나쁘면 해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학에 자리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입학하기보다 졸업하는 것이 훨씬 힘이 든다. 하지만 한국 학생의 경우는 외국인을 위한 쿼터에 적용받기 때문에 독일 학생들과 직접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7. 독일의 대학은 한국의 대학과 어떻게 다른가요?


기본적으로 독일에는 가지 다른 대학유형이 있다: 대학교(Universitaet), 파흐호흐슐레 (Fachhochschule), 음악대학교(Musikhochschule), 미술/예술대학교 (Kunstakademie)

1)
대학교(Universitaet) 일반적으로 능력에 따라 5 정도 소요된다. 여기에는 "연구와 학습의 일치"라는 원칙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본적인 학습 외에 가능한 빨리 혼자서 연구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연구를 하는 동안 자신만의 학문적 중점분야를 정하고 이것에 대한 연구에 집중할 있다. 대학공부는 보다 이론적인 면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파흐호흐슐레 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대학교(Universitaet)에서만 박사과정을 밟을 수도 있고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자질을 쌓을 수도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된 B. A. 그리고 M. A. 졸업증명을 획득할 수도 있다
.

2)
파흐호흐슐레(Fachhochschule) 보통 4년제로 운영된다. 공부는 보다 실제적인 측면에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서 공부하면 보다 빨리 직장생활을 있다.(박사과정은 개설되지 있지 않다, 따라서 박사학위를 받고자 하는 학생은 대학교(Universitaet) 지원해야 한다.) 파흐호흐슐레는 근자에 외국 학생들에게 그리고 독일 학생들에게 점점 선호된다. 강의계획은 대학교보다 체계화되어 있다. 파흐호흐슐레는 대학교보다 학문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다 응용과 관련되어 있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 , 학습과정 안에 이미 직업을 위한 실습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전공 커리큘럼은 특히 학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실습교수의 요청에 따라 엔지니어, 경영학, 디자인 등이 준비되어 있다. 파흐호흐슐레를 졸업해도 역시 디플롬 (Diplom) 받는다. 그리고 종종 세계적으로 인정된 B.A. 그리고 M.A. 학위 역시 획득할 있다
.

3)
그밖에 대학과 동등하고 프리랜서 음악가 또는 예술가로서의 직업을 준비할 있는 음악대학교 (Musikhochschule), 미술대학교(쿤스트아카데미 Kunstakademie) 있다. 음악-, 예술학교에의 입학허가와 학업은 대학공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이것에 관해서는 목록에 있는 Degree_Course 음악대학교/미술대학교 편을 참고)

8. 독일 대학은 성적을 어떻게 표시하나요?


독일 대학은 전통적으로 필수 학점제를 쓰지 않고 학기가 끝난 작은 논문 (Arbeit) 쓰면 교수로부터 학점(Schein) 받게 된다. 교수는 학생에게 1 - 6 까지의 점수를 주게 되는데, 1 가장 좋은 성적이다.

1 :
매우 우수

2 : 우수
3 : 만족

4 : 충분
4 : 불충분

6 :
재수강(Wiederholung)

http://blog.naver.com/hwacho1?Redirect=Log&logNo=14001463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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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근대 배경 영화 보기(포스터)

http://tong.nate.com/silberne/b328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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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해설

(1) 아래 아 한글

woyzeck.hwp

(2)결론부 요약만 보기

클라루스의 보고서에서는 보이첵의 인격이 그 자체만으로 관찰되고 판정되는 “고립된 개체”로 간주되었다. 반면 뷔히너는 드라마 속에서 보이첵을 그에게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적 관련 속에서 보여준다. 뷔히너는 특히 클라루스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뷔히너의 가난한 상황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클라루스의 보고서에서 보이첵은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개체로 파악되었으나 뷔히너의 드라마에 나오는 보이첵은 이와 반대로 자기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책임능력이 없는 병자이며 부자유스러운 사회적 희생물로 나타난다. 클라루스에 대한 뷔히너의 항변은 단순히 “보이첵이 책임능력이 없다”는 식의 대립적 표현이 아니라 이 보고서의 문제제기 속에 나타나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뷔히너는 사회와 연결을 맺지 않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주체의 개념은 허구라는 점을 주장하면서 한 범죄인의 죄는 그 자체 고립된 개체로부터는 찾아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뷔히너는 이 작품 속에서 죄 없이 죽어간 보이첵의 변호를 시도하면서 그를 범죄자로 만든 당시 사회환경의 모순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과 준엄한 비판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이 드라마는 보이첵이라는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3월 혁명 이전시대 독일 전지역에서 가난과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집단적 운명을 형상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보이첵>에 나오는 전체적 인물구성의 특징은 “빈부 사이의 격차가 혁명의 유일한 요인”이라고 믿었던 뷔히너 자신의 정치관과 상응한다. 즉 한쪽에는 항상 타인을 위한 희생물로 전락하는 가난하고 교양 없는 민중계급에 속하는 보이첵, 마리, 안드레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권력과 금력을 수단으로 이들을 희롱하고 억압하고 학대하고 착취하는 지배계급에 속하는 대위, 의사가 있으며 이 두 부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사회적 간격이 항상 존재한다. 고수장은 예외적인 인물로서 실제로는 하층계급에 속하면서도 마치 상층계급에 속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는 과시욕에 사로잡혀 있다. 대위는 군대계급상 하위에 속하는 보이첵을 봉건적 종속관계로 지배하고, 의사는 명목상으로는 자유롭게 체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일방적이고 착취적인 계약에 의거하여 보이첵을 실험용 동물 내지는 상품으로 간주하면서 그를 임금관계 속에 묶어둠으로써 그를 철저하게 지배한다. 대위와 의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이첵을 학대한다. 이들은 서로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의 대립은 뷔히너가 활동하던 시대에 실제로 대립했던 사회적 양대 세력 - 즉 시대착오적 ancien regime을 동경하면서 기독교적 도덕에 집착하는 봉건주의자(대위)와 진보의 믿음 속에서 계약과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적 경쟁에 몰두하는 근대적 시민계층(의사) 사이의 투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드라마에는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군인과 학자 사이의 경쟁을 포함한 총체적인 사회적 갈등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보이첵은 이러한 경쟁의 갈등 속에서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한다. 사회전체의 권력관계로부터 유발된 갈등이 개인적 영역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오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同類的 결합마저 깨뜨린다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에 나타난 비극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뷔히너는 이러한 상호소외의 원인이 어떤 특정 인물이나 특정 계층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근본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보편적인 사회모순 속에서 고뇌하며, 이러한 긴장의 조건 속에서 서로 투쟁하고 경쟁하도록 강요를 당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인간소외의 책임을 전담하지 못한다. 대위는 관능적 충동을 포기하라는 신학적 명제에서 출발한 도덕에 집착하고 의사는 경쟁 속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강박감 속에서 비인간적 실험에 몰두한다. 이런 점에서 모두가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다. 보이첵은 이들과 달리 종교나 학문으로의 도피구도 찾을 수 없고 자신의 욕구와 생활환경 사이의 모순을 어떤 방법으로도 지양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광증의 희생물이 되어 뜻하지 않게 살인자로 전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보이첵과 마리 사이의 개인적 갈등도 결국은 물질적 곤궁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보이첵이 처해 있는 가난한 상황은 그에게 자유롭고 자율적인 실존의 기반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의무감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고, 아내와 아이를 만나자마자 점호를 받거나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이들과 헤어져야하고, 군대 상관을 위해서 나무를 자르거나 대위의 심부름을 하면서 면도를 해야하고, 3달 동안 완두콩만 먹고 의사의 실험에 인간 몰모트 역할을 함으로써 하루 종일 자신의 온몸을 송두리째 파는 셈이다. 보이첵은 억압과 착취와 과로의 연속 속에서 완전히 탈진상태에 빠지고 만다. 보이첵은 그가 속한 군대 사회의 강제적인 요구와 정신적 강박감에 시달리면서 결국 사생활의 영역 속에서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고유한 역할을 실행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는 경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마리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가 없었고 결국 마리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건장하고 귀고리 선물까지 줄 수 있는 고수장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이첵은 처음에 마리의 부정을 눈치채고서도 그녀에게 공격적인 殺意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더욱 첨예화되는 사회적 고립과 소외로부터 비롯된 환각이 심화되면서 그의 살의가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간다. 보이첵이 끝까지 유일하게 믿었던 그녀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완전히 처참하고 절망적인 고립감 속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그의 정신상태가 더욱 더 강박적으로 변화하면서 살의가 서서히 굳어졌다고 여겨진다. 이후 대위가 마리의 부정을 빗대어서 보이첵을 조롱하고 구박하며 고수장이 완력으로 그를 쓰러뜨리는 등, 연이은 정신적인 억압과 육체적인 수난과정의 악순환 속에서 마침내 살의가 폭발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보이첵의 혼란스러운 정신상태는 마리의 부정으로부터 느끼는 개인적 배신감과 이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그보다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우월한 인물들로부터 받는 수모와 피해 때문에 더욱 더 발광상태로 격앙되면서 악화된다. 그의 환각 속에 나타나는 살해욕망은 단순히 마리라는 한 여인에 대한 질투심만이 아니라 자신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사회 전체에 대한 보복과 복수, 그리고 타락한 세계 전체에 대한 절망적인 탄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보이첵이 자신에게 여러 형태로 폭력을 행사해 온 당사자들에게 보복을 하지 못하고 환각 속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명령에 따라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연약하고 불쌍한 마리에게 칼날을 돌릴 수밖에 없는 자학적이며 자폭적 행동을 저지르는 상황이 바로 이 작품에 나타난 가장 큰 비극성이다. 착취와 억압, 약육강식의 논리를 존립의 근거로 삼고 있는 “살인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연쇄반응은 항상 이렇게 엉뚱한 희생자를 제물로 남긴다. 마리 역시 충동적으로 不貞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처한 가난하고 외로운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는 극한상황 속에서 파멸하는 비극적 희생물이다. 마리와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야말로 “죽도록” 일을 하는 보이첵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사회환경 속에서 자기 인생의 유일한 支柱였던 마리를 착란 상태에서 살해하는 행위는 사실상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두 남녀의 비극적 인생은 <당통의 죽음> 1막 2장에서 한 가난한 시민이 던지는 말을 연상시킨다:


“우리 인생은 죽도록 일하는거야.”

( Unser Leben ist Mord durch Arb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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